기고-절친, 정수연의 대통령상 수상을 축하하며
기고-절친, 정수연의 대통령상 수상을 축하하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1.22 15:4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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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화/작가
강수화/작가-절친, 정수연의 대통령상 수상을 축하하며

친구 정수연이 지난 18일 대통령상을 받았다. 친구로서 무한히 자랑스럽고 내 일처럼 기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출간한 내 책의 추천사를 써준 깊은 인연이기도 하다. 여고 동기지만 졸업할 때까지 그녀를 몰랐었다. 친하게 된 동기는 참 특별하다.

나는 나이 서른이 다 되어 결혼을 했다. 1962년생이니 당시로서는 적령기를 넘긴 노처녀였던 셈이다. 결혼하기까지 약 10여년을 K그룹 대구공장에서 일했다. 그곳은 직원이 약 3000명이 넘는 그룹 내에서도 가장 큰집격인 섬유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대학을 갓 대학을 졸업한 남자신입사원 4~5명이 일정한 기간 연수과정을 거치고 대구공장으로 내려왔다. 사무직 종사 여직원들은 연초가 되면 알게 모르게 서로 탐색전을 벌이기도 한다. 서로 멋진 상대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갓 대학을 졸업한 남자 사원들은 군대 3년에 대학 4년까지, 무려 7년이란 세월을 더 많이 먹고 오는 셈이니 고졸 출신의 여직원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남녀 간 연애하기 좋은 상대들이 되었다. 외모가 훌륭한 여직원 주변에 항상 남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지만 키가 작고 평범했던 나에게 신입남자대졸사원들의 눈길이 머물기란 쉽지 않았다. 10년이란 세월동안, 멋진 많은 남자들 줄줄이 짝을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패잔병처럼 남아있었다.

우여곡절 끝 지금의 남자와 상견례를 갖게 되었다. 남자 부모는 나를 보자마자 탐탁찮은 듯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적막감이 감도는 분위기속 시아버지 될 사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혼사는 어려울 것 같으니…우리는 그만 일어 설랍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무례한 말을 던지고 밖으로 나가자 자기 아버지를 붙잡으려는 듯 황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두 사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자리 다 마다하더니 겨우 저런 아가씨 데려오려고…어째 여자 보는 눈이 그렇게 밖에 안 되냐?”, “아버지, 겉으로 평가하지 마시고…”, “뭐어 볼 게 있냐? 대학을 나오기를 했어, 가진 게 많기라도 하냐? 네가 그 정도 밖에 안 돼?”, “아버지, 아가씨가 비록 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여느 대학 나온 사람보다 더 내공이 있을 겁니다. 진주여고란 곳이 경남 제일의 명문여고이며…, 그 학교 출신으로 대학을 못 갔으니,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잠재돼 있겠어요? 그 응축된 자원이 언젠가 빛을 발할 것으로…”

방안에서 자기 아버지와 싸우는 남자의 말을 듣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저 남자를 잡으리라 결심했다. 대학진학을 하지 못했다는 열등감, 나의 가장 큰 트라우마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가치 있게 평가를 해 주었던 것이다.

십 몇 년 전 여고 총동문회가 모교에서 개최되었다. 서울과 경기지역에 살고 있는 동문과 동기들은 각 기수별로 수십 대의 관광버스에 올라 진주로 향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정수연이라고 해. 현재 식약처에서 일하고 있는데…어떻게 운이 좋아 의사가 되어…”
스스로를 낮추며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과거 남편가족과의 상견례 때 나를 막아 방어해주던 말, ‘무한한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에 무조건 남자를 믿고 싶었던, 그때의 감정과 비슷했다고나 할까.

실력이 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의대를 들어가겠으며 또 그러한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하는 의사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며, 그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나오지 않고서야 어떻게 훌륭한 의사가 되었겠는가.

그 후 나는 그녀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녀는 알수록 정이 가는, 꾸밈없이 소박하고 겸손한 친구였다. 한 번은 나와의 약속 장소에 팔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부러진 팔은 오른 팔이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밥을 먹으니 우스꽝스럽고 불편해 보이기도 해 반찬을 그녀 밥 숟가락위에 올려주니 극구 사양하며 말렸다. “오른팔을 못 쓰게 되니 자동으로 왼손으로 먹어지더라. 인간이나 동물이나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거 아니겠어?”
여기저기 흩어지는 밥알은 아랑곳없이 왼손으로 밥을 푹푹 잘도 퍼 먹던 모습을 보며 많이 웃었지만, 무슨 일에든지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임하는 그녀 면모가 잘 드러나는 단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상’ 이라는 게 흔한 종잇장은 아닐 것이다. 어떤 연유로 무엇을 했든, 공헌을 인정했기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큰 상 받은 친구를 열렬히 응원하고 지지하며 앞으로의 삶에 그 빛나는 훈장이 어떤 형태로든 선(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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