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비봉산 대봉정
진주성-비봉산 대봉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21 15: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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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문화유산원장
심동섭/진주문화유산원장-비봉산 대봉정

비봉산의 옛 지명은 대봉산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비봉산과 관련하여 설명하기를, 시내와 산의 경치가 영남 제일이요, 큰 산과 큰 강이 있어 인물이 많고 물산이 풍부했다.

비봉산은 높이가 138m이고 산세가 봉황이 비상(飛翔)할 때의 모습이 명당의 형국을 이룬다고 하여 대봉산(大鳳山)이라 불렀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진주에 인물이 많이 나, 조정인재의 반이 영남이요, 그 중 반이 진주 사람이라 이는 비봉산의 정기를 타고났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무학대사로 하여금 비봉산의 맥을 끊은 후 대봉(大鳳)을 비봉(飛鳳)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 우리의 진산 비봉산에 일부 시민들이 무분별하게 개발하여 유실수를 심고 가축을 길러 자연경관을 크게 훼손하게 되었다. 이에 진주시에서 3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여 ‘비봉산 숲 가꾸기 사업을’ 시행하여 원상을 회복하고 그 정상에 대봉정을 창건하였는데, 준공을 맞아 필자가 그 기문(記文)을 지었기에 비봉산을 등산치 못한 많은 시민들께 대봉정 건립사실을 알렸으면 해서 그 전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봉정기(大鳳亭記) 옛 사람들은 산수가 수려한 곳에 정자와 누각을 지어 그 지역의 지리형승을 널리 알리고 시인묵객들과 백성들이 올라 시문을 짓기도 하고, 세파에 시달린 심신을 달래며 호연지기를 기르기도 했다.

지리산의 웅장한 기상과 덕유산의 안온한 회포가 북쪽 대륙에서 몰아치는 모진 바람 막아주고, 그 맥이 비봉산까지 뻗어내려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히 감싸 안으니 이 터전이 천하의 명당으로, 땅은 기름지고 백성은 순박하여 인재가 대대로 끊이지 않았다.

또한 호국충절의 정신이 강해, 불의에는 기꺼이 목숨도 바치는 대쪽 같은 백성들이 천년을 면면히 이어온, 교육 문화예술 충절의 고장이 바로 우리 진주다. 근래 진주시에서 비봉산 제모습찾기 사업에 정성을 다해 원상을 회복하고 비봉산의 원래 이름을 되찾는 의미에서 2018년(戊戌) 시월에 대봉정을 세우니 옛 사람들의 정취에 부합하는 일이다.

정자에 올라보니, 비봉산엔 대봉이 알을 품고 천왕봉과 향적봉에서 발원한 남가람 푸른 물은, 유유히 500리를 감돌아 우리 고을에서 청룡이 꿈틀대듯 크게 요동치고 흐르니, 천하에 이보다 더한 명승이 또 어디 있으랴.

이 정자에 오르는 우리 고을 사람들은, 이 맑은 자연 풍광에 세속적인 얽매임을 씻고 심신을 가다듬어, 7만의 호국영령이 잠든 진주성과 촉석루를 굽어보며 선열들의 우국충절의 정신을 되새기고, 올곧은 진주정신을 배양하여 천추만대에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이에 기문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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