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정초기도
진주성-정초기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2.16 16: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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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정초기도

섣달그믐 일찌감치 여기저기의 절집에서 부쳐 온 정초기도 안내장이 진작부터 와 있다. 바라는 바를 부처님께 기도하라는 뜻인데 온 가족의 이름을 축원지에 써서 동참금과 같이 접수를 하면 스님이 신년 초하루 불공을 올리면서 축원지를 낱낱이 읽어주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절집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네댓 살쩍부터 따라다닌 고향 인근의 천년고찰이었고 스님의 법문은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나 할머니의 말씀은 수미단에 높이 앉은 금빛 번쩍거리는 불상이 부처님이신데 전지전능하시다는 정도의 요지로 알아듣고부터였는데 머리가 굵어가면서 의미의 변화가 끝없이 이어져 왔다.

종교의 철학적 의미나 신앙의 학술적 분석이라기보다는 나름으로 깨우침에 따라 그 접근성도 달라졌다. 발복의 근원을 발원의 대상에서 얽매이지 않으려는 것도 신앙심의 변화의 큰 맥 이였고 시공에 한정되고 싶지 않은 것도 큰 변화다. 그래서 초하루 보름도 따르지 않고 여러 재일도 가르지 않는다. 내가 가야겠다고 마음이 들면 언제든지 가고 내가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간다. 가야겠다고 할 때와 가고 싶을 때는 다르다. 절집사람들이 보면 무례하기 그지없겠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천상천하독존자심’이라는 주련을 자주 보지만 그래서만은 아니다. 대웅전에 줄지어 앉거나 서서 염불하고 절을 하는 것은 보기가 좋을 때는 바라볼 뿐이고 주로 나한전이나 조사전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편안하게 앉아서 숙의한다. 선문답의 근처에도 못 갈 무지렁이가 숙의한다면 오만방자하다고 하겠지만 헌 향 삼배의 예를 갖추었으니 속인의 심경 정도는 헤아려 줄 것만 같고 무엇보다도 묵언의 설법을 들을 수 있어 무시로 간다.

묵언이기 때문에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소득이고 들으나 마나 한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는 것도 만족이다. 묵언이라는데 그 매력이 있다. 어느 절집을 가나 나한전의 아라한은 대부분 인자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으신 모습들인데 꼭 한 분은 어찌하여 심기가 비틀어지셨는지 오뉴월 녹두 깍지는 저리 가라하고 뒤틀어져서 돌아 앉아있다.

그래서 나한전보다는 옛 스님들의 존영이 걸려있는 조사전에 들리기를 좋아한다. 최고의 근엄함과 최대의 자비로움을 품어내는 표정이면서 내가 듣기 원하는 말씀이나 꼭 들어야 할 말씀만 해 주시기 때문이다. 묵언의 설법, 그 설법의 선택권이 내게 있다는 것은 복 받은 사람이다. 정초인데 어느 날이든 가고 싶어지면 정초 기도를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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