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효를 위해선 짝을 찾아가라
도민칼럼-효를 위해선 짝을 찾아가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2.21 13:1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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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효를 위해선 짝을 찾아가라

우리의 부모님 세대 때만 하더라도 대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면 조상에게 크나큰 불효를 한다는 의식이 잠재해 있었다. 그리고 노후를 자식에게 의지했다. 힘든 일을 하지 않고 손자를 안고 마실 을 다니며 사는 것을 최대 복으로 쳤다. 나이 스물이 되기 전에 늦다 싶어도 스물 중반이면 시집·장가를 가 아들딸 생산하기에 들어갔었다. 이목구비 중에 어느 부분이 없다거나 지체 장애인이라 해도 끼리끼리 짝을 찾아 부부관계를 이어 갔었다.

결혼한 부부가 자식을 갖지 못하면 무조건 여자가 회임을 못 한 거로 간주를 하였었다. 남편이 무정자증 상태일 수도 있고 남편에게 번식기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애먼 여자가 되어야 하는 억울함을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 했다.

요즘처럼 부부가 병원에 가서 불임 원인을 찾아보려고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용한 점쟁이 말을 듣고 조상귀신 때문이라며 거금을 들여 굿을 하고 절에 찾아가 100일 기도를 한다든지 온갖 정성을 다했다. 결국은 여자 나이 마흔이 넘으면 남편은 다른 여자를 찾아 작은 마누라를 들였으나 남편의 외도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딸만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부에게는 역시 아내에게 그 책임이 돌아왔었다.

얼마 전만 해도 대를 이으려는 생식본능이 이토록 강했었다. 지금처럼 아예 혼인을 거부한다거나 부모를 의지해 혼자 살아가기를 하는 자식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위에 열거한 아들을 원했던 이유에 대해 자녀들 세대에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성장한 자녀들이 일찍이 짝을 찾아 알콩달콩 사는 것이 부모는 최대 행복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우리 세대만 해도 어렸을 때부터 부부관계를 맺는 꿈을 꾸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부모님의 품에 안겨드리며 대를 잇는 효를 배우며 살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갑자기 농경문화에서 공업화 산업혁명이 일어난 여파로 흔히 말하는 세상이 변한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따라서 가내 소득도 높아지며 생활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우리의 2세들에게도 생활교육 환경이 바뀌게 된 것이다.

결혼적령기를 넘겨버리고 남자나 여자나 홀로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아들딸들이 자기 짝은 자기가 찾아 부부 생활하기를 거부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말했던 몽달귀신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농경 생활에서 도시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우리의 2세들이 생활환경이 달라졌다. 산과 들에 피어나는 나무와 풀과 냇물이나 자연을 대하지 않고 살았다. 어린 나이에 유치원에 가는 자녀들이 글자공부와 노래와 율동을 공부만 했지, 우리처럼 자연 속에서 살지 않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살았다. 대가족생활에 직접 내리받는 효를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녀들 대부분이 대학교육을 받은 고급 인텔리로 변신을 했지만, 우리처럼 산과 들이나 물에서 단련된 체력이 아니며, 자립심이나 웃어른을 공경하며 부모를 봉양하는 효심을 기르는 훈련이나 공부가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들은 일화이다. 홍수가 난, 강에 어느 부부가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떠내려가고 있었다. 아버지를 먼저 구하고 아들을 구하려 했지만, 이미 아들은 물살에 휘말리고 말았다고 한다. 아내가 아들을 먼저 구해야 하지 않느냐고 원망하자, 나를 낳아주신 분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영원히 볼 수 없고 아들은 또 낳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이처럼 자식을 구하는 일보다는 부모에게 효를 우선시했으나 요즘 자식들 세대에서는 아예 시집 장가를 가지 않으려 떼를 쓰고 있으니 우리나라 장래가 걱정스럽다.

핵가족화 영향으로 자식들이 어렸을 때 효와 자립심을 길러주지 못했다. 시대변천에 따라 이런 효(孝) 교육이 부실했던 것도 우리 부모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은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아들딸이 많아도 너무 많다. 옛날처럼 노후를 자식에게 누리겠다는 꿈은 사라진 지 오래고 다만 짝을 찾아가 살아만 준다면 부모는 더 바라지 않겠다는 집들이 몇 집 건너 늘어만 가고 있다. 자기 짝은 자기가 찾아 나서는 것이 부모에게는 효도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니 크게 소리쳐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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