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행여 매화 향을 맡으시려거든
도민칼럼-행여 매화 향을 맡으시려거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02 13: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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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행여 매화 향을 맡으시려거든

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려면 꽃을 보러 오고 마음이 힘들면 계곡을 거닐어 보는 것이 좋다는 글을 써왔다. 정말 그럴까? 주5일 근무가 자리를 잡고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소확행이나 일과 개인의 사생활에 균형을 맞추며 산다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삶의 화두가 되면서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적잖이 주변에 있다. 물론 아직도 매일매일 투잡(two job)알바를 해야 살아가는 이들이 많지만 여유로운 이들도 적지 않다. 양극화가 일반화된 세상이다. 그 와중에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면 선해질 거라는 예상은 자꾸 깨져나간다.

엊그제 사진가로 활동하는 지인이 페이스북에 속상한 일을 적어놓았다. 귀촌을 해서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집을 짓고 울타리도 없이 자유롭게 사는데 집 마당으로 침입한 이들이 마당에 불을 피우기에 부군이 제지하자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당장 어찌 해버릴 것 같은 욕설을 듣고 너무 놀라서 이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묻고 있었다. 그렇게 무례하고 악한 이가 그 집 마당에서 한 일은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외딴 섬을 찍기 위해 온 것이다.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사진기를 여는 이의 거친 욕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야생화를 찍는 이들 사이에서도 장탄식이 나오는 일이 더러 있다고 한다. 귀한 야생화를 발견하면 저만 찍고 다른 이는 못 찍도록 야생화를 뽑아버린단다. 심지어 발로 짓이기고 간 흔적을 보고 망연자실할 때도 있다하니 그 아름다운 꽃을 찍는 이의 마음은 또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디 사진만 그런가? 아름다움과 미를 추구하는 분야의 사람들이 선하지만은 않다는 것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예술을 한다는 이들도 그러하니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떨까? 우리는 우리 안의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에서 늘 선택의 상황을 맞이한다. 오로지 선하게만 오로지 악하게만 살 수는 없지만 대체로 선한 선택을 하는 이들은 선하게 살아간다. 그런 의지가 없는 경우, 우리는 쉽게 악해질 수 있다.

이세상의 어떠한 신념도 사람이 먼저여야 하는데 신념이 먼저인 이들이 많다. 악은 이럴 때 선을 가장하여 다가온다.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며 악을 쓰던 태극기부대 할머니가 지하철을 타기 전 손녀와 통화하며 자애로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자던 목사님이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는 빨갱이들을 다 잡아서 죽여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통일을 지향하며 민족을 사랑한다는 이들이 이념이 다른 자들은 처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어떤 신념도 이념도 사람이 사람을 해할 수는 없는데 공공연히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우선으로 놓고 나머지는 다 부정한다.

이산하 시인의 신작 시집 <악의 평범성>에 나오는 ‘악의 평범성2’를 읽는다. “불교 승려들이 숲을 지날 때 혹 밟을지도 모르는 풀벌레들에게 / 미리 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방울을 달고 천천히 걷는다는 말에 / 난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다. / 우리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을 밟아버렸던가” / 득음의 경지에 이른 어느 고승이나 성자의 얘기가 아니다. / 유대인 학살을 총지위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의 말이다/ 라는 시의 구절을 읽으며 절망하다가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자신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니 섬진강의 매화를 보러 오지 않아도 된다. 벚꽃 한철 그냥 지나쳐도 된다. 그 오고가는 시간에 세상의 억울한 일들을 한번쯤 돌아보면 좋겠다. 다만 늘 세상의 힘든 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함께 하는 이들은 잠시라도 쉬었으면 한다. 매화 향으로 마음을 어루만지고 여유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은 여전히 너무 평범한 악들이 많으니 그에 대적하여 변화를 꿈꾸려면 내안의 에너지를 살려야 하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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