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남도청 진주환원으로 맞이할 진주시민의 봄을 위해
기고-경남도청 진주환원으로 맞이할 진주시민의 봄을 위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03 16: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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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헌/도청환원 진주시민운동본부 준비위원회 사무총장
이충헌/도청환원 진주시민운동본부 준비위원회 사무총장-경남도청 진주환원으로 맞이할 진주시민의 봄을 위해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의 암흑기이자 ‘겨울’이었다. 모든 일상은 멈춘 채로 자유와 인권은 억압되고 시민들은 꿈을 펼칠 수 없었으며 미래를 그릴 수도 없었다.

우리에게 일제 저항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상화(1901~1943)는 1926년 <개벽(開闢)>지 6월호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다.

이상화 시인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 화두를 던지며 겨울이 지나 봄이 왔지만, 일제에게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겨 조선의 봄은 오지 않았음을 표현하며 일제에 대한 저항과 울분을 표현했다.

이상화 시인이 외치던 ‘빼앗긴 들’인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으로 우리 품으로 돌아와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나 세계 8위의 경제 강국이 되었지만, 서부경남 도민들과 진주시민들은 아직도 시린 겨울, 오지 않는 봄으로 남아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진주는 고려시대부터 ‘北평양 南진주’, ‘조정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인재의 반은 진주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한반도 남중부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로서 민족의 중흥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조선중기 이후 의(義)를 중시한 남명 조식선생과 그 제자들은 입신양명(立身楊名)을 멀리하며 벼슬길에는 나서지 않은 반면, 경상좌도(안동 등) 출신 사림파가 득세하며 조정을 장악하면서 진주는 쇠락의 길을 겪었고, 급기야 1925년 일제의 만행으로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강제 이전되어 버린 후 서부경남과 진주는 아직도 겨울에 머물러 있다.

21세기도 20년이 지난 지금, 서부경남 대다수 지역이 인구소멸 위기지역에 진입했고, 지역경제도 새로운 활력을 찾지 못해 여전히 시린 겨울을 아직도 보내고 있다.

작년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어 창원시가 광역시에 준하는 특례시로 지정되고, 경남도는 부산 · 울산과 함께 ‘동남권 메가시티’를 구축한다는 소식에도 진주를 포함한 서부경남은 발전에서 한 없이 멀어지는 것 같아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3월의 봄날에 진주를 사랑하고 역사와 문화에 조예가 깊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빼앗긴 들’인 경남도청을 본래의 자리를 돌리려 그 명칭을 ‘(가칭)도청환원 진주시민운동본부’로 정해 출범한다. 필자 또한 그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어 벅찬 기대감과 동시에 무거운 사명감이 앞선다.

혹자는 혁신도시 건설, 서부경남 KTX(남부내륙철도) 추진 등 “진주와 서부경남에도 봄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러한가? 누군가에게 강제로 빼앗긴 것을 다시 돌려받지 못하고, 다른 것을 준다 한들 허탈한 마음이 가실 리가 없다. 결국, 도청이 진주로 돌아와야 그 마음이 눈 녹듯 풀리지 않겠는가?

‘도청환원 진주시민 운동본부’구성원들이 만들어 갈 하나하나의 발걸음이, 일제에 의해 빼앗긴 것들을 본래로 되돌려 왜곡된 우리역사를 바로세우고 진주시민과 서부경남 도민이 꿈꾸는 봄날을 조속히 맞이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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