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선비의 염치를 중시 했던 윤민헌(尹民獻)
칼럼-선비의 염치를 중시 했던 윤민헌(尹民獻)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22 14:4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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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선비의 염치를 중시 했던 윤민헌(尹民獻)

나는 본디 성품이 간솔(簡率)하고 오만해서 세상과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다가 늦게야 벼슬길에 나아갔다. 그러나 한사코 권세 있는 자들을 뒤쫓지 않았다. 또한 온 세상 사람들이 탐욕스럽고 더러웠으므로 같은 대열에 서는 것을 부끄러이 여겼다. 그때 대북의 당파가 아주 기세를 펴고 있었는데, 전조(銓曹, 이조)에 천거된 것이 세 번이었으나, 임시직인 가랑(假郎)을 제수 받았다. 그래서 머리를 굽히고 봉직했으나 마음속으로 울울하여 즐겁지가 않아 외직에 보해지기를 구하여 괴산(槐山)으로 나갔다.

그러나 늦추고 조이는 나의 다스림을 토호(土豪)들이 싫어했고, 마침 언관(言官)들이 저들과 같은 당이라서 그들의 위세를 빌려 나를 모함했다. 그 후에 성균관 사성이 되었으나, 간악한 당의 괴수의 자식이 대사간이라, 내가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점을 문제 삼아 결국 배척을 당했다. 얼마 되지 않아 대동찰방으로 나갔다. 그곳은 탐악한 관리가 연이어 거쳐 간 터라서 몹시 시들고 병들어 있었으므로, 조목조목 진술하여 위로 조정에 보고하여 병폐를 제거하고 피폐한 백성을 구제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나를 모함하여 그길로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했다. ‘재주는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면서도 뜻만은 옛 현인들을 흠모하고, 선비들 사이에 천리가 끊어지다시피 한 것을 분개하여 그 비루함이 마치 나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이와 같은 지조를 더욱 굳게 하여 변치 않는다면 가는 곳마다 패하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벼슬 생각을 완전히 끊고 죽는 날까지 밭두둑에 숨어 지내야 하겠다’이렇게 해서 벼슬길에 나선 것이 겨우 10여 년이었고, 녹봉을 받은 날은 거의 없었다. 일찍이 우계(성혼) 선생의 문하에서 나아가 공부할 때 선생께서는 “명리를 위해서는 안 된다”고 늘 경계했다. 나는 그 말씀을 평생 가슴속에 품고 잊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스스로 명(銘)을 쓰는 것은 자식과 손자로 하여금 빈말을 지어내어 후세에 허풍을 떨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윤민헌(1562~1628, 66세)이 죽기 전 미리 써 놓은 묘지명(墓誌銘)이다.

26세 때인 1588년(선조 21년)에 사마시의 진사과와 생원과에 모두 합격하고 47세 때인 1609년(광해군 원년)의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가 된 후 전라도사·괴산군수·성균관 사성·대동찰방에 제수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파직되었다. 윤민헌은 사마시 양과와 문과에 급제하고도 청요직에 오르지 못했다. 그가 말한 대로 권력자들의 뒤를 쫓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비들이 염치를 돌아보지 않게 된 상황을 개탄하고, 그들의 비루함이 나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염려했다고 했다.

윤민헌은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개결(介潔)했으며 권력자들을 추종하지 않은 것을 가장 자부했으며 선비의 염치를 중시했다. <관자(管子)>에서는 예(禮)·의(義)·염(廉)·치(恥)가 국가를 지탱하게 하는 사유(四維)라고 했다. 염은 굽음 없이 정직한 염직과 사욕 없이 맑은 청렴을 뜻한다. 한편 치는 마음에 부끄러워하는 바가 있으면 귀가 빨갛게 되는 데서 부끄러워한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논어>와 <맹자>는 ‘사람이 수치를 알지 못하면 결백하지 않게 되고 사회에 수치의 마음이 없어지면 관습을 위반하거나 도덕률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논어> ‘공야장’에서는 ‘교묘한 말, 남 보기 좋은 안색, 지나치게 공손함을 중국 춘추시대 문학가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다니 나도 또한 부끄러워하고, 원망을 숨기고서 그 사람을 벗하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는데, 나도 또한 부끄러워한다’라 했다. 또 <맹자> ‘진심상’에서는 ‘사람이 수치가 없으면 안 된다. 수치스러운 마음이 없음을 수치스럽게 여기면 수치스러운 행위가 없어진다. 수치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하다. 교묘하게 임기응변하는 자는 수치스럽게 여길 줄을 모른다’라고 했다. 윤민헌이 부끄러움을 강조한 것은 선비들이 지켜야 할 정신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시대를 비판하는 뜻을 지녔다. 요즘 예(禮)·의(義)·염(廉)·치(恥)가 없는 사람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구정물을 일으켜 온 나라가 시끄러워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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