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탈자 만분염기전(夸奪子 萬墳厭其巓)
칼럼-과탈자 만분염기전(夸奪子 萬墳厭其巓)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3.29 15:4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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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과탈자 만분염기전(夸奪子 萬墳厭其巓)

과탈자 만분염기전(夸奪子 萬墳厭其巓).

위 글을 해석하면 명리만 쫓는 탐욕자들이 죽어 묻혀있는 만 개의 무덤이 산봉우리를 누른다. 라는 뜻이다. 아래는 임금의 사위였던 박미(朴瀰, 1592~1645)가 죽기 전 미리 써 둔 묘지명일부를 편집하여 소개한다. 나는 열두 살에 임금의 사위로 선발되었으니, 그 배위는 정안옹주다. 나는 어려서 그리 우둔하지가 않아, 열한 살 때 대략 경전과 제자와 문집을 읽고서 서울로 들어가 이항복과 신흠 두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을 했다.

나는 성격이 솔직하고 간솔해서 위의가 없었고, 옹주 또한 개결하여 엄격하면서도 아주 화락했다. 나는 본시 글로써 쓰일 만하다고 자부해 왔으나, 지금 반백을 넘기고 보니 근력이 거의 다하여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하면 꿈속에 있는 듯이 여겨진다. 나는 책을 읽어 의리를 얼추 알아, 일에 임해서 반드시 옳고 그름을 살폈다. 스스로 헤아려 보아 오로지 문묵(文墨)을 스스로 즐겼다. 언젠가 한유(韓愈)의 말을 따서 ‘문자 사이에서 죽고 살겠다’고 다짐했으니,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다. 나는 남들과 어울리거나 유력자를 찾아가 청탁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뜻대로 평소 생각을 따라 살아 나갔지, 신분이 고귀한 자의 태도를 짓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동료들에게 조금 칭찬을 받았으나, 지금은 도무지 옛날의 내가 아니다. 나는 처음에 순의대부를 제수 받았는데, 공신의 맏아들이라는 이유로 자의대부로 승품되었으며, 선조대왕께서 즉위하신 40년에 추은(推恩)으로 통헌대부에 품계로 승급되었다.

그리고 광해군 때 인목대비를 폐위시켜야 한다는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인조반정 뒤에 봉헌대부로 승품되고, 공신회맹의 제례 때 숭덕대부로 승자(陞資, 정3품에 올림)되어 다시 오위도총관을 겸했다. 만년에는 혜민서 제조를 겸대하고, 한 번 청나라 심양으로 사신 갔다가 왔다. 이것이 일생의 대략이다. 나는 임진년(1592년·선조25년)에 태어나고 옹주는 경인년(1590년·선조23년)에 태어났다. 아이들에게 엄명을 내려 합장하도록 하고, 미리 이 글을 지어 묘문의 돌에 새기도록 한다. 본관(本貫)은 반남(潘南), 호(號)는 분서(汾西). 박미가 죽은 지 29년이 지나 박미의 장손 박태두는 송시열에게 비명을 청하고, 박세채에게는 박미의 자찬묘지를 보완해 달라고 했다.

박세채는 어려서 박미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일이 있다. 박세채의 보완 글 일부를 인용하면 ‘그는 재주가 많았으나 부마(駙馬)였기 때문에 뜻을 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자찬묘지에서 한유의 말을 인용해서 자신은 글이나 지으면서 한평생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유(韓愈)는 〈잡시(雜詩)〉에서 ‘예전의 과탈자(夸奪子)들은, 만 개의 무덤이 되어 산봉우리를 누른다’라 했다. 과탈자는 명리만 쫓는 사람을 말한다. 지난날 명리만 추구하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 있는가? 무덤이 되어 있을 뿐이 아닌가? 박미는 한유의 기상을 닮고자 했다. 훨훨 드없는 대지를 아래로 깔아 보면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기린마를 타고 날아가련다. 거처가 쓸쓸하고 의복과 기물은 낡고 수수했으며, 권세가나 부호가와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포부를 지니고도 연도(鉛刀, 무딘 칼, 자기의 재주를 겸손하게 가리키는 말)를 한 번 시험할 수가 없었다. 박미는 부마라는 화려한 이름만 지녔지, 생활은 무척 검소했다’ 송시열이 지은 그의 비문에 따르면 ‘박미의 자손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고 회고 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옷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자신의 몸과 밀착되어야 할 직분과 명예가 바로 그렇다. 벼슬살이를 하는 사람들보다도 부마들은 더욱 그런 위화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은 귀인의 태도를 짓지 않고 뜻 맞는 선비들과 어울리려고 했다. 선비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고자 했던 것이니, 그 고뇌가 가련하다. 요즘은 이런 부마급의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권력 가까이만 접근했다 하면 몸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가 하면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부동산 투기로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가 진동하니 마스크를 겹으로 써야 하겠다. 며칠 전 진주혁신도시 LH 본사 앞에 갔다가 일행이 여기서 밥을 먹자고 하기에 “썩는 냄새가 진동하니 멀리 가서 먹자”고 하면서 강 건너 와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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