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집미(執迷)
칼럼-집미(執迷)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12 14:5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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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집미(執迷)

집미(執迷).

위 용어는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의미는 ‘고집으로 인해 갈팡질팡하는 것’이라고 불교적인 용어로 풀이하고 있다. 한 방향이나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미 가진 것을 포기하거나 상실한다면 견디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한 다음에도 대부분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이 즐기려 한다. 만약 사업가가 이를 초월하여 자신이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저의를 의심받거나 바보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기부는 매우 용기 있고 지혜로운 행동이므로, 궁극적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불교에서 ‘평상심(平常心)이 바로 도(道)’라고 한 것은 쉽고도 여유롭게 세상을 사는 태도를 일깨운 것이다. 인생에서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공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흘러간 혹은 흘러가는, 예사롭게 보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삶의 편린(片鱗)들을 감상하는 것이다. 시비와 승부에 초연하면서 경쟁에서 벗어나 삶의 진실을 추구하다 보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의식이 한층 높아지게 된다. 평상심이 있는 사람은 욕망 때문에 갈등을 겪지 않는다. 욕망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법이다. 오랜 갈등이 해결되어도 새로운 문제들이 반드시 속출하기 때문이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무의식 속의 유혹을 이길 수는 없다. 평상심은 세상사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인생 여정에서 우리는 실로 무수한 일들을 겪는다. 생명의 가치는 비범한 일들을 통해서만 승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아실현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방황과 좌절을 하게 되고, 큰 꿈이 이뤄지기를 갈망해도 허무함을 주체하지 못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러나 평상심을 잃지 않으면 득의(得意)의 순간에도 경망스럽지 않고, 실패했을 때도 낙담하지 않는다. 인간은 성공적인 인간관계, 자아실현 등의 수많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욕구는 동기를 부여하고, 이는 행동으로 연결된다. 한 가지 욕구가 만족되면 새로운 동기와 행동을 촉발시키고, 심리적으로 냉철해지거나 침잠(沈潛)하게 된다. 그런데 욕구에 대한 태도와 충족 방법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평상심을 갖지 못한 사람은 뜻을 이루면 광분(狂奔)하고 교만(驕慢)해져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반대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절망감에 빠져서 원망과 불만을 쏟아놓는다.

옛말에 ‘강아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변소간으로 간다’고 했다. ‘운명에 순응하면 업혀가지만 거역하면 질질 끌려간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오라는 데는 많다. 오라는 데가 어디인고? 하니 다름 아닌 명산의 산신령들이다. 공간이 가만히 있듯이 시간 또한 정지되어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있는데 흘러가는 것처럼 혼란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애달파 한다. 다만 시간의 단위인 영겁(永劫)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이렇게 만나고 이렇게 이별을 서두른다’ 라고 우리와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칠갑산인(七甲山人) 소진거사(小眞居士)는 말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그 변화 속에서 나를 보고 말이 소리가 되어버릴까 두렵다.

가면을 쓴 종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머리 깎고 갈 때 마음과 지금 마음이 같으냐? 출가(出家)나 재가(在家)의 삶들이 같아 보인다. 교회나 성당에 처음 갈 때 마음과 단상에 서서 설교 할 때 마음이 같으냐? 고 묻고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아(迷兒)로 살아 왔는데 앞으로는 고아(孤兒)로 살아가지는 않을는지 고민해야 한다. 나의 삶에는 지우개로 지울 것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내 허물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자. 부처님께서는 ‘법대로 말하고 말대로 행동하라’고 했다. 그렇게도 말도 많고 시끄럽던 재·보궐 선거는 끝났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보여준 민심을 좀 더 깊이 살펴서 국정을 쇄신하는데 클 혁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아집, 오만, 교만으로 집미(執迷)했었던 것은 아닌가? 한 번 되돌아보기 바란다. 프랑스의 용맹스럽고 영웅적이었지만 불운했던 군인 라로슈푸코(1613~1680)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사멸하는 존재로서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모든 것을 욕망한다. 태양과 죽음은 오래도록 쳐다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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