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전기너무나 유명해 아마 식자들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토마스 쿤이 쓴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것이 있다. 이른바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개념을 유포시킨 원점이 되는 책이다.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따분할 수도 있으므로 이것을 학문적으로 논하는 것은 자제하지만, 그 핵심은 과학발전의 본령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듯이 지식의 ‘누적’이 아니라 이른바 ‘패러다임’의 변환이라는 ‘혁명’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즉 쿤은 “‘패러다임’이라고 칭한 것이 과학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주목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천문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의 구체적인 사례들(예컨대 지동현상, 산소, X선, 라이덴 병의 발견…등등 너무나 흥미로운 과학적 사례들)을 동원하면서 과학발전의 실제 역사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토마스 쿤과 이 책의 엄청난 위상을 생각할 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를 야기한 과학적 사례들 중 뜻밖에 ‘전기의 발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왜 이것이 그의 관심에서 누락되었는지, 그것은 나도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따로 연구한 적은 없다. 하여간 의외다.
‘전기’의 경우도 그렇다. 결여가정을 적용해본다. “만일 전기의 발견이 없었다면…”, “만일 전기가 없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결과가 초래된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일순간에 올 스톱이다. 현대세계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정전으로 방이 한동안 깜깜해지던 저 1950년대의 어느 밤시간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촛불이나 호롱불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온 세상 모든 지구인의 컴퓨터와 휴대폰이 먹통이 된다. TV도 영화도 볼 수 없다. 냉장고와 세탁기도 못 쓴다. 어디 그뿐인가. 공장도 멈춘다. 모든 비행기도 추락이고 모든 자동차며 열차도 멎는다. 삼성도 테슬라도 파산이다. 또 세상의 모든 은행도 증권사도 거래가 중지되고 특히 병원이 멎는다. 한순간 전쟁보다도 더 많은 사망자가 세상의 모든 병원에서 발생할 것이다. 가히 인류사상 최대의 카타스트로프(대재난)다.
지금 우리들의 삶에서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의 거의 모든 삶이 전기로 돌아가고 있다. 결여가정이 그것을 확연히 드러내 보여준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전기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엄청난’이라는 수식어로도 모자란다.
전기는 그저 과학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전기의 발견과 응용은 혁명 중의 혁명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처음 이 엄청난 것을 발견했을까? 일반적으로는 영국의 과학자 길버트(William Gilbert, 1540~1603)가 정전기를 발견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그 관심은 프랭클린, 뒤페, 쿨롱, 에디슨…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정전기의 발견은 더 거슬러 올라가 2600년 전의 탈레스가 최초였다는 기록이 있다. 탈레스는 철학의 아버지였다. 우리가 철학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사의 최대 사건은 ‘전기’의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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