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학발전에 좀 더 투자를
칼럼-과학발전에 좀 더 투자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19 09:3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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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과학발전에 좀 더 투자를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다. 지금부터 과학의 발전에 관하여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옛날에 부산에서 한양에 가려면 빠른 걸음으로 2주, 느린 걸음으로는 한 달이 걸렸다. 인도까지는 일 년 반에서 3년이 걸렸다. 고비사막을 건너다 죽기도 하고, 얼음길을 건너다 죽기도 한다. 삼장법사 현장의 인도 길을 동행한 제자들 중 한 사람은 도중에 한데서 자다가 얼어 죽었다. 또 한 사람은 산길을 가다 낙석에 맞아 즉사했다. 지금은 비행기 안에 반나절만 편히 앉아있으면 부처님 나라에 도착한다.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그제야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자식처럼, 인간은 현대과학 문명의 혜택을 잃어버리고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그 고마움을 절감할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절에서는 공양주들은 한겨울에도 찬물에 설거지와 빨래를 해야 하고, 부목들은 지게로 난방·취사용 땔나무 대느라 등골이 휠 것이다. 냉장고가 없으니 음식은 상하기 일쑤일 것이다. 의학과학기술발달로 죽었을 사람이 지금은 살아있다. 핵폭탄을 만든 것을 제외하고는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선조에는 많게는 90%가 노비·종·평민 등 피지배계층이었다. 이들은 세금·부역·병역 등 모든 의무를 짊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평등한 세상이다. 이것이 다 과학·기술·농업혁명과 경제·정치·교육·사회제도의 발달로 이루어진 일이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90% 이상의 사람이 까막눈이었지만 지금은 대중교육의 혜택으로 모두 교육을 받으며 인터넷의 발달로 웬만한 지식은 공개되어있다. 음식·교육·의료보험·사회보장 등으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얼마나 신장되었는가?

옛날 중세유럽이나 아시아에 무서운 질병이 나돌았다. 흑사병은 수년 만에 유럽과 중국 인구를 3분의 1이나 몰살시켰으며, 그 후로도 170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 런던·베네치아·이탈리아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집어삼켰다. 또한 천연두·수두·소아마비·디프테리아 등으로 어린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을 비통함에 빠지게 했다. 장이 꼬이거나 맹장염에 걸리면 그냥 죽음뿐이었다. 중세유럽의 유아·영아·어린이 사망률은 엄청났다.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많게는 3분의 1이 죽었다. 예를 들면 영국 왕 에드워드 1세의 왕비는 자식을 열여섯 명 낳았지만 그중 아홉 명이 여섯 살을 못 넘기고 죽었다. 왕족이라도 별수 없었다.

특히 콜레라 장티푸스에 걸리면 집안이, 마을이, 지방이, 나라가 떼죽음이었다. 정조는 즉위 초부터 재위기간 내내 종기로 고생하다 죽었으며, 효종도 종기를 앓은 지 7일 만에 죽었다. 지금은 항생제 한 방이면, 또는 수술 한 번이면 된다. 백내장·녹내장에 걸리면 암흑세상으로 직행한다. 지금은 간단한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다. 그런데 지금도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의학기술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종교에 매달리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조기검진으로 질병을 미리 찾아내어 치료한다. 옛날에는 힘줄이 끊어지면 그냥 평생 불구신세가 된다. 특히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면 걷지도 못하고 평생 앉은뱅이로 지내야 한다.

지금은 두 동강 난 아킬레스건을 잡아당겨 꿰매면 된다. 농사일을 하다가 작두에 손가락이나 손목을 잘리면 하나님·성모 마리아·부처님·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해도 방법이 없었으나, 지금은 현미경 미세접합술로 다 붙일 수 있다. 중풍을 맞으면 방구석에 누워 죽을 때까지 대소변 받아내게 하며 가족들에게 크나큰 짐만 된다. 그래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는 넋두리가지 생겼다. 지금은 풍도 예방이 가능하고 뇌수술로 치료할 수도 있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점점 더 병들어가는 세상이라고 한탄하는가? 옛날에는 50이 되면 이빨을 다 잃어 합죽이가 되는 일이 흔했지만, 지금은 임플란트를 하면 거의 자기 이빨 같은 기능을 발휘한다.

재래식 화장실에는 사람들 변을 통해 나온 하얀 생고무줄 같은 회충이 우글거렸다. 조선의 18대 임금 영조는 중증 기생충 감염 환자였다. 얼마나 뱃속에 회충이 많았는지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회충을 토하기도 했다. 큰 것은 길이가 15cm에 달했다. 한 번은 코로 나온 적도 있다고 <이조실록>에는 기록하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에 가면 벽이나 전봇대에 성병치료 광고전단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소위 창병 또는 화류병(花柳病)이라는 질병은 치료불가능이었다. 특히 매독은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옮겨간 후 돌고 돌아 전 세계를 감염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병으로 신체가 썩어들어 가거나 기형으로 변형되고, 이 병은 피를 통해 태(胎)중의 아이에게까지 전염시켜 자기 아이를 매독아이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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