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좌표 찍기
아침을 열며-좌표 찍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26 14: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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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좌표 찍기

필자는 ‘좌표(座標) 찍기’에 신물이 난 사람이다. 군 시절 박격포(×포) 사수로서 실제 훈련에서도, 단지 지도위에서만 하는 도상훈련에서도, 입이 닳도록 복명(服命)복창(復唱)을 하였고, 손발이 닳도록 산등성 위 산자락 아래로 뛰어다니기도 하였다. 어설픈 관측병이 불러준 대로 포 방향을 돌렸다간 영락없이 큰 사고로 이어지니 포탄 한발 한발, 장약(裝藥) 한낱 한 낱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포 중대에서 포탄이 잘못 날아가 인근 밭에서 밭 갈던 농부와 소 가까이에 날아가 터지는 바람에 자칫 대형 큰 사고가 날 뻔 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실탄 및 포탄 사격 시 반만의 준비를 하고 주민 통제를 철저히 하여서 안전사고를 철저하게 예방하고 있지만, 필자의 군복무 당시에는 주민홍보와 통제를 한다고 하여도, 간혹 훈련장 근처의 자기 밭에 소를 몰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또 예기치 않게 오발탄도 간혹 생기기도 하였다. 포사격 훈련이란 주어진 좌표에 세 개 층의 동그라미를 몇 개를 그려 놓고 중심에 포탄이 떨어져 터지면 100점, 그 다음 순서대로 차점을 매기고, 또 채점단에서 지적하는 다른 표적으로 옮겨서 발사를 하도록 하여 전체점수를 매겨 상벌의 조처를 한다.

지도상 좌표배정은 언제나 군사기밀사항이다. 군대의 전략 및 전술 사항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필자는 도표상 좌표 찍기와 실제 포사격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아 우리 포대원 전원이 돌아가며 포상휴가를 받기도 했다. 모든 전쟁은 정의롭지 못하고 야비하다. 손자도 전쟁이란 속임수(兵者, 詭道也)라고 까지 말하지 않았던가. 그 중에서 전쟁의 방법 중에 숨어서 몰래 하는 포전이나 미사일, 암살, 화해하고 난 다음 돌아서자마자 등 뒤에서 칼을 던지거나 총을 쏘아 죽이는 방식은 싸움의 실효성을 있을 줄 모르나 사실상 비겁한 전쟁이다. 주먹과 주먹이, 칼과 칼이, 말과 말이, 배와 배가, 비행기와 비행기가 맞부딪혀 싸우는 것은 살벌하기는 하지만 적과 마주하고 있기에 비겁함을 다소 덜하다 할 수 있겠다. 하여 싸움과 전쟁이 끝난 다음 친구가 되기도 한다. 포전이나 미사일전은 꽁꽁 숨어서 자기를 노출시키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하여 살상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다른 전쟁방식에 비하여 더 비겁하다고 할 수 있다.

좌표 찍기를 하여서 포탄을 집중적으로 발사하여 적군 내지 상대방을 살상시키는 지점이 화지점(火地點)이다. 포탄을 날리는 쪽은 비교적 안전하겠지만, 행군을 하다가 예기치 않게 날아오는 포탄에 살상당하는 군대는 참으로 비극적이고 비참하다. 아군은 이를 노리고, 적군은 이를 피하려 한다. 그렇다. 이처럼 좌표 찍기는 피아(彼我)를 확연하게 구분한다. 우리 편은 살아야 하고 상대는 죽여야 한다. 우리 편은 숨어서 들키지 않아야 하고, 적군의 동태는 주도면밀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확한 좌표를 공유하여 집단 융단 포격으로 상대가 더 이상 꿈틀거리지 못하도록 초토화(焦土化)시켜야 한다. 이것이 좌표 찍기의 핵심이다.

6·25 전쟁을 겪으며, 그 뒤 대다수의 남자들이 군복무를 한 우리나라 남자들은 이런 피아의식과 적진 구분이 비교적 분명하다. 그리고 좌표 찍기에도 능수능란하다. 군복무 당시 익혔던 효율적인 적대적 대처 행동이 저절로 반사적으로 발현되어 효과를 보기도 한다. 1992년 4월29일부터 5월4일까지 일주일간 LA 일대가 무법천지가 된 LA폭동 사태에서 보여준 사례가 그것이다. 시작은 경찰관의 흑인 청년 로드니 킹 집단 구타사건에서 출발하였지만, 미국 메이저 방송사들이 91년도 한국인 슈퍼마켓 정당방위 사건인 ‘두순자’씨 사건을 방송하면서, 사태는 흑백갈등인 아닌 한인과 흑인 간의 분쟁으로 전개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군복무를 한 LA 한인 예비군들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전술적 행동으로 인하여 오히려 한인가게들은 안전하게 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는 다르다. 전쟁터와 일상생활은 다르다. 군대와 정당은 다르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다른 사람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다를 수 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를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교묘한 프레임으로써 일상의 삶터를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돈과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프레임의 올가미를 던진다.

이에 호응하여 뒤질세라 숱한 손가락들이 헤일 수 없이 좌표 찍기를 하며 공격의 포탄을 날린다. 포탄을 날린 사람들은 득의양양 휘파람을 불겠지만, 이 집중포화를 당한 사람들 중 더러는 한없이 상심하여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더러는 실성하여 정상 생활이 어렵기도 하고, 더러는 스스로 자진(自盡)하여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좌표 찍기의 슬픈 자화상 들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공존시켜 나가는 슬기를 찾아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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