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5월이 서글프다
진주성-5월이 서글프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5.11 15: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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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5월이 서글프다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아카시아 꽃이 반발했다. 등나무의 보라색 꽃도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서 탐스럽게 피어났다. 영산홍도 마음껏 피었다. 화투 5월의 난초도 덩달아서 피었다. 우렁쉥이가 맛있을 때다. 우렁쉥이 비빔밥도 젖혀 두고 초고추장 아니라도 통마리 집어서 입술로 짠물 쭈르륵 훑어내며 빨아들이면 진한 솔향기가 미각을 마비시키고 싱싱한 봄 멸치 쌈밥도 다른 반찬을 기죽이는데 갯바람 맞으며 묵은 친구랑 막걸리 한잔 곁들이면 극락이고 천국이다.

갯마을이 아닌 산촌이면 어떤가. 삼겹살 사고 불판 챙길 것 없이 논두렁 밭두렁에 지천으로 나서 튼실하게 자란 쑥 뜯어다가 밀가루에 털털 섞어서 찐 쑥버무리는 또 어떤가, 봄의 정취를 통째로 들이킨다. 요리사나 주방장 손을 거칠 것 없이 엄마 손이면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5월,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부처님 오신 날 등 가족 간, 사제 간의 오붓한 모임이나 봉축행사로 화합과 축제의 달이다.

그런데 어쩌나. 마트든 백화점이든 유일하게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즐거움은 빼앗겼다. 이 날만이라도 모양내서 해보려는 효도의 기회도, 내심으로 기다렸던 호사의 기회마저 계좌이체가 마침표를 찍는다. 부모님의 앞가슴에는 천륜의 꽃이 효심으로 피어나고 선생님의 가슴에 존경의 꽃이 사랑으로 피어나고 절집마다 불심의 꽃이 연등으로 피어나 사바세계에 광명의 빛이 가득한 사랑과 존경과 자비의 달인데 말이다. 사리 긴 보리밭에 5월의 햇살은 결결이 밀려와서 살랑거리는 실바람을 안고 드러눕는다. 보리 이삭이 팼다. 종달새를 불러본다. 대답이 없다. 소풍 나온 아이들도 없다. 뻐꾹새가 애끓는 울음을 토한다. 산비둘기의 울음소리도 처량하다.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는 지금은 어디만큼 가고 있을까. 멀어지기 전에 불러서 소찬일망정 마주 앉아 밥이라도 먹여 보낼 것을, 보내고 마음 아플 줄을 미처 몰랐다. 화상통화도 한두 번이고 문자 안부도 어쩌다가 할 것이지 무시로 만나던 지인조차 멀어져가고 있다.

언제쯤이면 마스크를 벗고, 언제쯤이면 마주 앉을 수가 있을까. 장미꽃보다 더 붉고 함박꽃보다 더 활짝 핀 웃음꽃이 피어나는 계절의 여왕 5월, 거리 곳곳에 현수막이 나붙었다. 잠깐만 멈추면 멈춘단다. 어쩌나 그래야지, 지금 멈추지 않으면 영원히 멈춰버릴 수 있다. 함께하지 못하는 5월이 서글프다. 까맣게 애가 탄 그림자를 데리고 동구 밖 과수원 길을 홀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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