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슬기로운 격리생활
시론-슬기로운 격리생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5.30 14:2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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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동/경남도립거창대학교 총장
박유동/경남도립거창대학교 총장-슬기로운 격리생활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확진자가 연일 600명대를 기록하고 있어 4차 대유행의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백신 접종이 가장 강력한 수단이지만 현재 접종률은 7.6%정도로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70% 정도 접종이 완성되려면 아직은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확진자도 다수 발생하고 있고 특히 젊은 층에서는 무증상 확진자도 나오고 있어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를 더하고 있다. 싸워야 할 적이 보이면 대처를 하면 되는데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을 경우 공포심이 극대화된다. 현재로서는 코로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 외에는 다른 특별한 수단은 없는 것 같다.

이런 위기 속에서 대면수업을 진행해야하는 대학 총장의 마음은 늘 조마조마 하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조금이라도 아픈 증상을 보이는 학생이 나타나면 혹시 코로나19로 인한 증상이 아닌가 하고 놀란다. 정문에서 모든 출입자에 대해서 신원확인과 발열체크를 하고 있고 기숙사의 경우 별도로 매일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있지만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다.

이런 와중에 필자도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주말에 집사람과 함께 이용한 식당의 옆 테이블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증상은 없었지만 막상 자가격리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고 나니 그동안 접촉했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검사결과 양성판정이 나온다면 나 자신의 안위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이 더 걱정이 되었다. 다행이 검사결과 두 사람 모두 음성이 나와 안도를 했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은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검사결과 음성통보를 받았을 때는 어둠속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음성이 확인되어도 접촉시점으로부터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접촉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통보를 받아 자가격리 기간은 일주일로 단축이 되었지만 집안에 갇혀서 온전히 일주일을 버텨내는 것은 또 다른 숙제였다. 격리에 필요한 생필품은 관할 구청에서 공급을 해주었고 냉장고에 비축된 것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면 되는데 하루 24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집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또 다른 숙제였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같은 공간에 일주일을 지내다 보면 사소한 일로도 싸움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어차피 집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인 만큼 이참에 집안이나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안정리를 하다보면 이걸로 인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유독 까만 봉지들이 많다. 그걸 정리하다보면 거기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상한 과일이나 야채가 나올 수도 있고 이걸로 인해 쓴 소리 하다보면 싸움으로 연결되고 마는 것이 보통의 집이고 우리 집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평화롭게 자자격리를 마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하되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요구하거나 그동안 안하던 것을 찾아서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 다툴 소지도 없어진다. 일주일간의 자가격리가 끝나고 집사람에게 자가격리의 목표를 달성해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자가격리에도 무슨 목표가 있냐고 묻길래 당신과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일주일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아내는 말로는 아니지만 눈으로 한두 번 레이저를 발사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 세운 목표를 달성했고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마치고 작은 성취감을 맛봤다. 일주일간의 자가격리를 통해 은퇴이후의 평화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팁을 얻은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며 힘든 과정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슬기롭게 대처해서 극복한다면 더 큰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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