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축제와 고구마 값
코스모스 축제와 고구마 값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10.2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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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구름도 우울고 너엄는 울고 넘는 저산 아래애 그으 예옛날 내가아 사알더언 고오햐앙이 이있었거언만...사안고올짜악엔 물이 마르고 기이르음진 무운전오옥다압 자압초오에 무우쳐이있네”

이 노래는 8년 전 10월 배밭에 갔다 오다가 뒤에서 오는 트럭에 치여 지금까지 병상에서 투병 중인 우리 친정엄마의 애창곡 중에 하나다. 몇 년 전부터는 치매가 와서 외동딸인 나더러 형님이라고도 했다가 사촌동생이라고도 했다가 동서라고도 하면서, 이 노래를 들려드리면 조용히 따라 부르며 “참 좋다. 좋아. 이기 누구 노래더라?” 하는가 하면 “너도 기름진 문전옥답이 있재? 우리집 건 잘 있는지 모르겄다. 나가 여기 요러고 있어서”라며 눈물을 훔치곤 한다.
북천코스모스밭만 지날 때면 노인의 이 노랫소리와 눈가에 눈물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잎 사이로 떠오른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는 햇참기름 내음 자르르한 이 말과 함께. 왜 그럴까? 그 뿌리를 가만히 더듬어 보면 저절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때는 코스모스가 양 길가에 피었었다. 따지고 보면 그냥 거기 핀 게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 심은 것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마을회관에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라는 새마을 노래가 나오면 잠을 곤히 자다가도 초등학생인 우리는 호미를 들고 마을회관으로 가서 이장님의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꽃을 심기도 하고 물도 주고 풀도 뽑아주고 했었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길가에 꽃은 예쁘고 착한 꽃 같은데 황금들판이나 문전옥답에 핀 꽃들은 종류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마치 점령군이 턱 버티고 서있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해 진다. 길가나 눈썹화단이나 아파트 옥상이나 화분이나 베란다에 심어도 문전옥답 축제장에 꽃향기 꽃모양과 똑같은 꽃인데 각 지자체 마다 매화축제를 필두로 벚꽃축제, 산수유축제, 국화축제, 장미축체, 튤립축제, 무궁화 축제 등 축제가 꽃을 피우니, 가계부채가 1000조원이 넘는 우리 국민 형편에 과연 이렇게까지 많은 꽃 축제들을 해댈 필요가 있을까 싶다.
요즘 꽃 축제장은 기본이 몇 만평이고 좀 이름이 있다 하면 몇 십 만평씩이다. 이러니 고추값, 마늘값, 호박값, 상추값, 배추값, 고구마값, 감자값, 참깨값 들깨값, 옥수수값 등 안 오른 것이 없고, 또 다 안 비쌀 수가 없다. 70년대 각급 학교에서 학생들 도시락을 검사까지 하면서 혼분식을 장려할 때는 식량 자급자족 율을 높이기 위해 논두렁마다 콩을 심어야 했다. 휴경지, 하천부지, 강둑도 눈 밝은 사람이 먼저 보고 일단 씨를 뿌리면 경작권을 인정해줄 정도로 식량증산에 관한 국민적 의지와 사회적 열의가 대단히 뜨거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몇몇 나라들과 FTA를 졸속으로 맺는 과정에서 정부가 나서 벼농사를 포기하면 쌀직불금을 준다며 각종 농사포기하고 꽃이나 키워 축제판이나 만들고 놀기를 적극 권장을 하는 이 미친 시대가 되었다. 그 결과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연연이 대박을 내고 있지만 농촌과 어촌과 산촌은 저 노랫말 그대로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은 잡초에 묻히고 어부들 노랫소리는 그친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후보들은 너무 좋은 환경에서만 자라서 그런지 이런 농어촌 살리기에 대한 구체적 처방이 없다. 그러니까 퇴임 후 밀짚모자를 쓰고 모내기를 하던 대통령이 생각이 난다. 비록 그분에게도 FTA 찬성이란 굴레가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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