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개는 따라서 짖는다
진주성-개는 따라서 짖는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6.22 15:16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개는 따라서 짖는다

평온이 가득하여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아서 오히려 숨이 막힐 듯한 조용한 시골 마을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언제나 마을 들머리에 있는 어느 한 집의 개다. 마을 초입에 누군가든 들어오기만 하면 짖는다. 처음에는 비상사태의 예령으로 낮은 톤으로 짖다가 거리가 가까지면 힘주어 짖는다. 주인 말고는 모두가 남이고 더러는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도 있지만, 이따금 보던 사람도 소용이 없다. 거두어주는 주인에게 제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집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거나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 하면 자지러지게 짖어댄다. 혼신을 다하여 경계태세에서 전투태세로 긴급수위를 높여 일촉즉발의 공격 자세로 위협하며 덤벼들며 짖어댄다. 직위는 수문장이고 직책은 보안과 경비경호다.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서 나무랄 것이 없다. 문제는 막무가내로 짖고 보는 것인데 더 큰 문제는 따라서 짖어대는 옆집 개다. 이유도 모르고 짖는다. 까닭이라고는 앞서 개가 짖기 때문이다.

상황판단 같은 것은 애당초에 없다. 무조건 짖고 보는 것이다. 우군 과시를 위한 것일 수는 있다. 이럴 때만 편 가름이 분명하다. 동질성을 내보이는 기회이다. 동조하는 것으로 결속력도 내보인다. 함께 뒹구는 의리다. 뒹구는 방법은 따질 필요가 없다. 무슨 짓을 하든지 서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서로는 문제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려 들지 않는다. 개니까. 뒤돌아볼 필요가 없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만 하면 된다. 공정이니 정의니 평등이니 하면 개소리가 된다. 개니까.

그래도 진영논리만은 철두철미하다. 편 가름의 흑백논리도 분명하다. 그러나 흑과 백의 구분은 모른다. 편 가름의 논리만 분명하다. 개는 개편이라는 논리다. 무슨 일이든지 함께 짖어대면 되는 것이다. 서로는 따질 일이 없다. 내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네 집의 개든 상관이 없다. 한집 개가 짖으면 따라 짖기만 하면 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황이야 어떻든 따라 짖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한 집 개가 짖으면 동네 개가 다 짖는다.

듣지도 보지도 않아도 상관없이 그저 따라서 짖는다. 내 편이라는 의식구조는 명확하다. 그래서 짖기 위해 짖어야 한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 짖는다고 가관이라고 하면 이상하다. 개니까. 이유도 모르고 짖느니 범접을 못 하게 하느니 하고 따지면 이상해진다. 먹혀들 데에 따져야지 도둑이 아니라고 꾸짖는 들 먹혀들 리가 없다. 개니까. 오로지 주인집 식구가 아니면 모두가 적이다. 그러면서 한동네 개는 모두 한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