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
칼럼-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7.05 14:38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

공직자는 천하의 걱정을 먼저 한 다음 내 걱정을 하고, 천하가 즐거워진 다음 나도 즐거워 할 것이다. 라는 의미이다. 이 내용은 중국 송나라 때 병법을 추진한 정치가이자 서북 변방을 지킨 군사 전략가였던 범중엄(范仲淹, 989~1052·63세)이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구절은 ‘중국 정신’의 일부가 되어 중국 문명의 찬란히 빛나는 보배와 같은 정신유산으로 남아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 때문에 송나라 때의 대학자 주희(朱熹, 1130~1200)는 범중엄을 ‘유사 이래 천하 최고의 일류급 인물’이라고 칭찬한 바 있다.

자는 희문(希文),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불행하게도 2세 때 부친을 여의었다. 26세 때 진사에 급제를 하고, 인종이 친정을 하면서 중앙 관리가 되었다. 1038년 서하의 이원호가 섬서 지방을 침공을 하자 전운사로서 섬서를 그 침공으로부터 방어를 하고 국경을 지키는 역할을 몇 해 동안 담당하였다. 그는 군사제도를 개혁하여, 장병들을 엄하게 훈련시키고 인자하게 대했으며, 허약한 송군을 정예부대로 편성하여 서하를 퇴치하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공으로 인종은 그를 부재상에 임명했으며, 1043년 관리제도를 정비하여 인재를 양성하며, 무력을 강화하는 개혁조치를 제안했다. 인종은 그의 개혁안을 받아들여 개혁안이 전국적으로 실시되게 된다. 이 정치개혁은 1041~1048년까지에 7년간 실시되어, 이 개혁을 경력신정(慶曆新政)이라고 불렀다. 범중엄은 출세한 뒤에도 부귀를 누릴 수 있었는데도 어렵게 자라 지독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자나 깨나 백성만을 생각했다고 전한다. 그는 송대의 사대부 풍을 형성시킨 사람이요, 육경과 역경에 통달하였고, 항상 감사히 천하를 논하며, 자신을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전한다.

범중엄은 뛰어난 공을 인정받아 54세 때인 1043년 추밀부사(樞密副使)로 승진했다가 같은 해 재상(宰相)으로 발탁되었다. 국정을 주도하게 된 범중엄은 조정 내의 각종 폐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방만한 관료조직, 수많은 군대, 지나치게 지출이 많은 재정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님을 간파하고 10개 항의 혁신안 ‘경력신정(慶歷新政)’을 제기했다. 첫째, 명출척(明黜陟): 승진과 강등을 분명히 함으로서 관리 승진제도의 개혁을 주장함. 둘째, 억요행(抑僥倖): 요행을 없앰으로서 관료 자제의 특권을 엄격하게 제한함. 셋째, 정공거(精貢擧):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를 제대로 다듬는다. 넷째, 택장관(擇長官): 덕과 재능에 따라 지방 장관을 선발한다. 다섯째, 균공전(均公田): 관전 분배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한다. 여섯째, 후농상(厚農桑): 농업생산을 중시한다. 일곱째, 수무비(修武備): 수도의 방위와 경비를 강화한다. 여덟째, 감요역(減徭役): 백성들이 지는 노동의 부담을 줄인다. 아홉째, 추은신(推恩信): 백성을 위한 정책을 충실하게 집행한다. 열째, 중명령(重命令): 조정의 규율을 엄격하게 하고 멋대로 고치지 않는다.

인종은 범중엄의 혁신안을 크게 칭찬하며 그해 10월 바로 조서를 내려 전국에 고시했다. 신정은 부패한 관리를 축출하고 부실한 재정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백성들의 생활은 나아졌으나 기득권 세력과 관료들은 극렬하게 저항했다. 개혁의 강도가 세면 셀수록 저항의 정도도 강했다. 기득권 세력들은 평소 때는 서로를 비판하고 공격하다가도 개혁이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로 뭉친다. ‘혀는 쇠도 녹인다.’는 말처럼 쉴 새 없는 범중엄에 대한 비방과 중상은 결국 인종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개혁이 시작된 지 3년 만에 인종은 범중엄을 자리에서 끌어냈고, ‘경력신정’은 사산(死産)되고 말았다. 그가 개혁정치를 시도한 뿌리에는‘먹고 입는 것은 간략한 것에 만족하되 공부는 만족을 몰라야 한다’는 가훈이었다. 그는 후손들에게 ‘절대 부귀를 탐내지 말 것이며 자신의 인품과 덕을 손상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현재 14억 중국을 이끌고 있는 시진핑 국가 주석은 범중엄의 이 구절을 종종 인용하여 젊은 학생들에게 인생의 이상적 목표와 정치적 포부로 삼으라고 권하고 있다. 주룽지 총리도 항상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에 얽매이시지 말고 상벌을 분명하면서도 신중하게 처리하실 것이며 유능하고 어진 인재들을 존중하고 요행을 바라지 마시옵소서!’ 대통령후보 중에 여론조사에서 인기가 올라가니 온갖 비방과 중상으로 흔들고 있다. 혀가 쇠를 녹일까? 걱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