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사람의 판단공자의 철학에 아주 흥미로운 말이 하나 있다. “그 수단을 보고, 그 연유를 보고, 그 목적을 보라.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廋哉)”가 그것이다.
탄복할 수밖에 없는 날카로운 인간통찰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 행동을 하고, ‘왜’ 그 행동을 하게 되었고, 어떤 결과에 만족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명명백백히 드러나 숨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말이다.
방향은 좀 다르지만, 사람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이 하나 있다. ‘그 평가하는 바(問其所評)’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 대답 내지 반응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숨길 수 없이 곧바로 드러난다.
2020년대의 한국에서는 예컨대 ‘삼성을 어떻게 보느냐’ ‘조중동을 어떻게 보느냐’ ‘박정희를 어떻게 보느냐’ ‘김대중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게 특히 그렇다. 이런 물음의 연장선에는 이승만, 김일성, 백선엽, 전교조, 나꼼수, 박원순, 조국, 촛불 등등의 주제가 한도 끝도 없이 나열될 수 있다.
하나하나 다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엄청나게 무거운 주제들이다. 사람들의 대답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각각 극찬과 극혐이 거의 비슷하게 공존한다. 정치가, 이념이, 작금의 한국사회를 통째로 집어삼킨 결과다.
여기서 패가 갈라진다. 이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이 단어들 하나하나가 다 폭탄이다. 이걸 잘못 건드리면 가족 간에도 친구 간에도 동료 간에도 연인 간에도 금이 간다. 심지어는 대판 싸움이 나고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자, 그럼 어쩔 것인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자기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그 생각을 뜯어고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둔다고 때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혁명을 통한 대량학살? 그게 방법이 되겠는가. 혹은 좀 더 온건하게, 정권을 잡고 자기편의 세상을 만드는 것? 그런데 이것도 사실 답이 못 된다. 나머지 절반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제로 겪어봤지만, 그 과정을 거치며 분열과 증오는 확대 재생산된다. 어느 쪽이 이기든 좋은 세상이라 할 수가 없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그러나 이 정도는 어떨까? 우선 작가 김훈의 말처럼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그런 물음 자체에 대하여, 그런 줄 세우기 자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특히 배제를 배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와 다른 이견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귀 기울여보는 것이다. 세상에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누군가에 대해, 어떤 일에 대해, 그 공과를 따로따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들을 따로따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균형과 조화를 하나의 가치관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저 중국이 모범을 보여준 바 있다. 모택동에 대한 저 등소평의 ‘공7과3’이라는 평가다. 7:3의 비율에 대해서는 입장에 따라 이견이 있겠지만, 중국인민들은 일단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으로 논란은 정리가 됐다. 그래서 오늘도 천안문 광장을 내려다보는 모택동 초상화의 표정은 일단 평온하다.
그것도 결국은 힘이 결정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당연하다. 현실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다만, 논란의 양쪽보다 더 중요한 ‘위쪽’이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그 위쪽을 바라보고 양쪽이 다 그것을 공유해야 한다. 이를테면, 조국, 번영, 정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런 것이다. 이건 양쪽이 다 표방하고 지지하는 공통의 가치다. 논란의 그 양쪽이 이 ‘위쪽’으로 수렴되면 평화적 공존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최소한 ‘저쪽’이 ‘적’은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삼성은? 한번 물어보기 바란다. 아마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우리 대부분은 반사적으로 극찬이나 극혐의 어느 쪽인가로 마음이 꿈틀거릴 것이다. 그러나 일단정지. 잠시 ‘가담’을 유보하고 그 위쪽인 한국을 먼저 생각해보자. 경쟁국 국민이 아닌 한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기둥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 윤리 이런 게 당연히 떠오르지만, 삼성도 일단 기업이니 이윤의 추구를 탓할 수는 없다. 재주껏 돈을 벌게 해주자. 그리고 잘 살펴보자. 그 돈이 한국의 정의와 번영과 행복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단, 이성의 눈으로. 그러고 나서 칭찬할 것만 칭찬하고 비판할 것만 비판하자. 역시 이성의 눈으로. 답은 오직 거기에 있다. 나의 주관적 감정만으로는 아직 답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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