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 가을
현장칼럼-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 가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1.14 17: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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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제2사회부 국장(합천)
김상준/제2사회부 국장(합천)-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 가을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든 가을 풍경. 상상만 해도 가슴이 저절로 설렌다. 봄에는 울창한 숲으로 우거져 초록의 향연을 펼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그늘막을 제공해 주며,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하얗게 눈 덮인 조화를 이룬다.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숲과 같다. 지금 단풍으로 화려한 군무 춤을 추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곳을 떠나고 싶다,

가을 단풍은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버려 머뭇거리고 할 시간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단풍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인생도 세월도 단풍처럼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오래 단풍을 보고 즐기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무언의 속삭임 같다. 그러면서도 금방 겨울이 닥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앞서다 보니 무슨 속내인지 몰라도 만감이 교차한다. 세월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결을 이루고 마을 어귀 신작로엔 코스모스가 하늘거렸다. 어릴 적 방과 후면 책가방 팽개치고 소먹이로 가던 어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환갑 진갑이 훨씬 넘었다.

가끔 초등학교 또래 친구들을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있다. 합천 황강 변의 갈대로 이어지는 석양노을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 내 고향이다. 고만고만하게 살면서 만나면 죽고도 못 살 것 같은 죽마고우들, 그때는 그곳이 그렇게 아름다운 명소인지는 몰랐다.

우리가 늘 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듯이 돌이켜보면 우리 삶 속에서도 가장 가까이 접하고 사는 아름다운 인연들과 자연 속에 살고 있지만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너무 가까워서 고마움을 등한시하는 보석 같은 아내가 그렇다. 서민들에게는 참으로 어지럽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옛 생각은 더 난다.

세월이 약이다. 이럴 때는 평화롭던 어린 시절 떠올려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을 하고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고 새마을 운동이 한창때였다. 지겟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던 키 작은 어린 일손들도 울력에 동원 되었던 때라 어린 형만이는 일이 무서워 서울로 도망가고 거식이 누나는 부산으로 식모살이가고 뭐식이 누나는 서울 평화시장 제품공장에 취직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가교 세대라고들 말한다. 부모를 원망하지도 않고 죽어라고 벌어서 자식들 가르치고 정녕 노후는 커녕 집을 마련하지 못해도 조상묘지를 걱정해야하는 세대라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글이 이렇게 끄적거리는 것이 좋다.

굴곡 없이 살아온 몇 친구들은 일이 지겹다고 쉬고 싶다고 하고 맨땅에 헤딩하며 살던 친구들은 사는 걱정은 안하지만 늘 그렇게 살아간다. 가을은 좀 쓸쓸 하기는 하지만 잘 숙성된 계절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무딘 감성도 끄집어내고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고마움과 풀 한포기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애처롭고 새롭다.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가 되었다. 가을은 결코 외로운 계절이 아니다. 아름다운 가을 속에 있다는 것이 즐겁다, 때로는 그 시절 고향 친구들과 사계를 떠올려 보는 것도 더없는 치유의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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