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만취(晩翠)
칼럼-만취(晩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1.15 17:3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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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만취(晩翠)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거처를 마련하면 대부분 당호(堂號)를 지었다. 당호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나 이상을 담았다. 그런 당호 중 대표적인 것이 만취당(晩翠堂) 또는 만취헌(晩翠軒)이다. 여기서 ‘만취’는 늦게까지 푸른,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푸름을 뜻한다. 이는 늙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삶의 의지와 철학을 의미한다. 송나라 초기 재상으로 노국공(魯國公)에 봉해진 범질(范質)은 조카인 범고가 자신을 천거해 주기를 바라자 그에게 경계하는 글을 지어 주었다. 그 내용 중 일부이다.

‘더디게 자라는 시냇가의 소나무는 울창하게 늦게까지 푸름을 머금는다(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는 글귀에서 ‘만취’를 따온 것이다. ‘소학(小學)’에도 이 글귀가 나오는데, 그 전후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물은 성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고(萬物則必衰)/융성함이 있으면 다시 쇠퇴함이 있나니(有隆還有替)/빨리 이룬 것은 견고하지 못하고(速成不堅牢)/빨리 달리면 넘어질 때가 많은 것이다(亟走多顚躓)//활짝 핀 정원의 꽃은(灼灼園中花)/일찍 피면 도로 먼저 시든다(早發還先萎)//더디게 자라는 시냇가의 소나무는(遲遲澗畔松)/울창하게 늦게까지 푸름을 머금는다(鬱鬱含晩翠)//타고난 운명은 빠르고 더딤이 정해져 있으니(賦命有疾徐)/입신출세를 사람의 힘으로 이루기는 어렵다(靑雲難力致)//제군들에게 일러 말하노니(寄語謝諸郞)/조급히 나아감은 부질없는 짓일 뿐이니라(躁進徒爲耳)’ ‘천자문(千字文)’에 나오는 ‘비파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이 변하지 않지만, 오동나무는 그 잎이 일찍 시든다(批杷晩翠 梧桐早凋)’는 글귀에도 만취(晩翠)가 있다.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벼슬을 마치고 고향집(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으로 돌아가 별당을 지어 안에는 만취헌이란 편액을 걸고, 밖에는 늦게 해안으로 돌아와 은둔한다는 의미의 해안만은(海岸晩隱)편액을 단 뒤 별세할 때까지 머문 영덕의 선비 만취헌 남노명(南老明:1642~1721)은 42세 때인 1684년 과거에 급제하여 내직으로는 병조·예조좌랑을 거쳐 외직으로는 거창현감을 지낼 때에는 기근(飢饉)이 심할 때 농민들을 구휼(救恤)하기도 했던 선정관리(善政官吏)였다. 56세 때인 1698년 임기 5년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귀향한 그는 종택(宗宅) 본채 옆에 대청이 있는 건물을 지은 뒤 당호를 만취헌이라 이름 짓고, 그것을 자신의 호로도 삼았다. 당호 편액 글씨는 당대 명필인 성재(省齋) 이진휴(李震休:1657~1710)의 것을 받았다. 함경도 관찰사·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그는 문신으로 특히 서예에 뛰어났다.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1690~1752)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남노명은 때로는 들에 나가 농사일을 거들고, 고향 어른과 친구들을 만취헌으로 초대해 막걸리와 화전을 안주로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가할 때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사마광의 ‘독락원기(獨樂園記)’를 수시로 암송하면서 자득(自得)의 경지를 누리며 보내면서 79세까지 살다 세상을 하직했다.

‘귀거래사(歸去來辭)’는 도연명(陶淵明:365~427)이 405년, 최후의 관직인 평택현(平澤縣)의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다. 제1장은 관리 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간주하여 읊었고, 제2장은 그리운 고향 집에 도착해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다. 제3장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다.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독락원기(獨樂園記)’는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며 정원 독락원(獨樂園)을 마련한 뒤 지었다. 세속을 초탈한 고상한 뜻을 품고 있어 후세의 많은 선비들이 그 뜻을 따르고자 했다. 후사의 일부를 소개하면 ‘세상 물정에 어두운 늙은이인 나는 평소 대부분 독서당에서 책을 읽는데, 위로는 성인을 스승으로 삼고 아래로는 여러 현인들을 벗으로 삼아, 인(仁)과 의(義)의 근원을 따져 보고 예(禮)와 악(樂)의 단서를 탐구한다’

우리나라에도 경북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있는 창녕 조씨 고택의 만취당,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의 만취당이라는 정자,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에는 만취당이라는 대청 건물이 있다. 행주대첩의 주인공인 권율(權慄:1537~1599) 도원수의 호도 만취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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