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당신은 어떤 유언을 남길 것 인가
칼럼-당신은 어떤 유언을 남길 것 인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1.16 17:3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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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진주시 문산읍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진주시 문산읍 여래암 주지-당신은 어떤 유언을 남길 것 인가

사람은 누구나 미래의 일을 ‘철저히 준비’한다. 진학준비, 시험, 결혼, 출산준비, 취업준비, 난방 준비 등 각종 준비를 철저히 하면서도 사후준비는 대단히 소홀한 것 같다. 아마도 ‘죽음’을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절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용성스님께서는 “내가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자”하셨다. 스님은 1940년 4월 1일 초저녁, 대각사 조실 방으로 제자들을 불러놓고 “내일 떠나려 한다”하자 제자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 곡하지 마라. 상복도 입지 마라. 다만 ‘무상대열반 원명상적조’만 암송해 달라”당부하셨다. 다음날 몸을 일으켜 앉아 나지막하게 게송을 읊었다. “모든 행이 떳떳함이 없고/만법이 다 고요하도다./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가니/ 삼밭 위에 한가로이 누웠도다”

그러신 후 앉은 채로 평화롭게 열반에 드셨다. 세수77세, 승납61세였다. 법정스님께서는 마지막 유언을 “장례식은 하지마라. 관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대나무평상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사리는 찾지 말고 탑도, 비석도, 세우지마라. 화장한 재는 오두막 뜰 꽃밭에 뿌려라!”,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은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당부하셨다.

스님의 법구가 마지막 다비장으로 가는 길, 관 위에 ‘비구(比丘)법정(法頂)’이라 쓰고 평소 수하던 가사로 덮은 채 다비를 한 무소유와 청빈(淸貧)의 맑고 향기로운 삶의 마무리는 우리들 가슴에 감동과 환희로 남아있다.

잇 펜(一遍, 1239-1289) 스님도 왕생하시기 7일 전, 평소 기록하셨던 모든 글들을 전부 소각해 버렸다. 이것이 ‘잇펜 스님의 분서(焚書)’다. 그래서 잇펜 스님의 저술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남아있는 것은 제자들이 기억을 되살려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것을 정리한 것들이다.

현생의 부귀권력은 죽는 순간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런 것들을 어떤 마음자세로 쟁취하였는가가 중요하다. 선한 방법으로 얻었다면, 내 생에 복전이 되겠지만, 나쁜 방법으로 얻었다면 이는 내생에 괴로움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전남 장성군에 텅 빈 비석하나가 있다. 글씨 하나 없는 ‘백비(白碑)’이다. 이 비석은 조선조 3대 청백리로 명성을 날린 박수량 선생의 청빈한 삶과 그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공적기록하나 없는 비석이지만 참배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비석에 온갖 미사여구를 기록해 놓아도 생전의 삶이 바르지 않았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비석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다. 중생들은 무지하고 욕심이 많아 죽기 살기로 재물을 탐하고, 그 재물을 이용하여 권세를 잡고, 그런 것을 이용하여 명예를 쟁취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럽고, 부자가 존경 받지 못하고, 정치인이 욕을 먹는다. 정직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거나 정치를 하였다면 권불10년이나, 3대부자 없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은 새로운 몸을 받기 위하여 잠시 이승을 떠나는 것이다. 누구나 죽을 때 갖고 갈 물질과 권력은 하나도 없고, 그동안의 업장만 가지고 갈뿐이다.

부처님은 길 위에서 탄생, 길 위에서 대도를 성취하시고, 45년간 맨발로 전법교화를 하시다 길 위에서 열반에 드시었다. 입멸 3개월 전, 자신의 입멸을 미리 예고하셨다. 3개월 후 그날이 오자 스스로 얼굴을 서쪽으로, 머리를 북쪽으로, 가사를 네 단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에 고인 후, 다리를 포개고 누우셔서 아주 편안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열반에 드셨다. 그 모습이 위대한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때부터 망자의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당신은 죽음이 임박하면 과연 어떤 유언을 남길 것인가?

범산스님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JS92uFeSxvDzKJMRUi2L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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