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인생은 걸음이다
현장칼럼-인생은 걸음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2.29 17:1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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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태/창원본부 취재본부장
최원태/창원본부 취재본부장-인생은 걸음이다

직립(直立)해서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된다. 그리고 평생을 걷고 걷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 그 인생은 막을 내린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걸음이다. 흔히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 즉 생각하는 인간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호모 암블란스다. 즉 보행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은 길을 찾고 걷는 것이다. 길을 상실하면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길을 가면서 끊임없이 길을 물어야 할 존재이다.

이인수 시인의 ‘길을 묻다’란 시가 있다. ‘눈 덮인 겨울 산에서/세상의 길들을 만난다//갈래 난 사람의 길/밀한 짐승의 길/하늘로 향하는/나무들의 꼿꼿한 길/문득 걸음 멈추고/뒤돌아 본 나의 길은/비뚤비뚤 삐딱하다//어디로 가야 할까/아직 봉우리는 아득한데/어디로 가야 할까/겨울 산비탈에서/다시/길을 묻는다//’

눈보라치는 겨울 산에서, 그 험준한 산비탈에서, 수많은 길들 가운데서, 우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새해로 시작하는 미지의 세상 문턱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 방향을 잃기 쉬운 때 계속 가야 할 우리 길을 위해 찾고 물어야 한다. “길이 어디냐”고.

세상에는 걸어 갈 길이 많다. 새해가 트이면서 어느 길을 어떻게 갈까 망설이게 한다. 길이 많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존재들마다 나름대로의 길을 따라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편한 길을 쫓고 자기에게만 유익이 되는 길만 쫓는 사람도 있다.

만년설로 덮인 안나푸르나에서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하다가 실종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은 정상에 빨리 오르는 것보다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길에 도전했다. 그가 한 말이다. “히말라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몇 가닥뿐입니다. 신이 허락해 주는 시간에만 우리는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는 거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길, 내가 개척한 길, 내가 욕심내고 가려고 한 길이 대단히 위험한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안전한 길도 유일한 그 길이다. 앞길이 보이지 않은가? 어디로 향할지 알지 못하는가? 생의 이정표가 없는가?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란 시가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나의 길 새로운 길//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오늘도... 내일도...//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우리가 누구를 주목하며 길을 갈 것인가? 그리고 그 유일한 길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자!

정신없이 달려왔다. 넘어지고 다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달려간 길에 12월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니 지나간 시간이 발목을 잡아 놓고 돌아보는 맑은 눈동자를 1년이라는 상자에 소담스럽게 담아 놓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여유를 간직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또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남겨 버린다. 지치지도 않고 주춤거리지도 않고 시간은 또 흘러 마음에 담은 일기장을 한 쪽 두 쪽 펼쳐 보게 한다.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 인생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리는 삶이라지만 무엇을 얻었냐보다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를 먼저 생각하며 인생을 그려놓는 일기장에 버려야 하는 것을 기록하려고 한다.

살아야 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두 가지 모두 중요하겠지만 둘 중 하나를 간직해야 한다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많은 시간을 잊고 살았지만 분명한 것은 버려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싶다. 하나 둘 생각해 본다.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하여 나는 12월을 보내면서 무엇을 버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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