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누가 함부로 무당이라 부르는가?세상에는 귀한 것이 참 많다. 아니 모두가 귀하다. 천한 것도, 무시할 것도, 가벼이 여길 것은 하나도 없다. 광활한 우주의 처지에서 보면 지구도 아주 작은 구슬 한 개에 불과하다. 우주의 눈에서 보면 지구는 없어져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가 없고 하늘이 없고 땅이 없으면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숨을 쉬겠는가.
영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고 이말 저말도 많아서 종잡을 수 없는 우리 삶의 여정이라, 이 근본에 대한 물음을 우리네 조상님들은 당집에서 물었다. 당집이 있는 마을을 주로 당산동네 당산 윗동네라고 불렀다. 첨단과학이 들어서고 청소도 기계가 다 하는 세상에 살긴 하다만 피 한 방울 만들지 못하는 인류의 사후세계에 대한 의문은 주로 종교를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고 위안으로 삼았다. 그 종교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지만, 인류를 하나되게 하고 사람을 선하게 하는 데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 종교라고 하지만 사람의 근본은 양심과 정직, 성실을 그 근간으로 해야 함에도 지금 종교는 점점 그것에서 멀어지고 있다. 종교 때문에 일어나는 인류 간의 전쟁은 차라리 종교가 없었으면 하는 회한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절을 1000번 해도 누가 아무 소리 안 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조형물이든 아무 관계가 없다. 삼국시대에 들어오기 시작한 불교는 그 이전의 우리 토속신앙을 갉아먹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왕들은 저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슈를 만들고 사건을 일으켜 되도록 국조 단군으로부터 민중을 떼어 자기에게 집중되도록 일을 벌였고 가장 서두른 일이 바로 불교를 앞다투어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야 민중들의 신앙정보를 흔들고 오직 왕만이 지존이며 왕이 편안해야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산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자신들이 하늘과 통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강권하였다. 왕건이 고려를 세우기 전 궁예는 자신이 미륵이라고 할 정도였다. 나는 절대자이니 나에게 모두 복종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말이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 일이 더할수록 우리의 단군 할아버지는 점점 민중들의 가슴 속에서 멀어져 간 것이다. 조화와 화합, 소통과 치유, 관심과 어짊으로 엮어진 단군칙어를 잃어버린 우리 민족은 그렇게 삼국으로 갈라졌고 서로 자기가 잘 났다며 싸움질을 시작하여 자그마치 2000년을 헤매다 기적 같은 해방을 맞이하고 불굴의 의지로 여기까지 왔고 단숨에 세계 10대 강국의 선진국에 들어섰고 이제 서서히 세계 5대 강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국운 상승기에 무당, 무속에 대한 개념정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우리 국민 스스로 착각을 하고 오류를 범하여 우리끼리 서로 다투려고 하기에 두 눈으로 보기 참으로 안타까워 이를 제대로 전달하고자 한다. 앞서 말한 불교, 유교, 최근의 기독교는 우리는 고유종교가 아니다. 다 수입품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에게 고개도 숙이지도 않고 버젓이 대접을 받고 무엇이 그리 당당한지 지금도 가슴을 딱 펴고 기운을 펼치고 있다. 물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들이 들어올 땐 우리 국민들의 정신력이 무척 떨어졌을 때나 아주 가난했을 때였다. 일본처럼 타국의 종교를 막았다면 우리나라에서 불교나 기독교가 제대로 힘이나 썼겠는가.
그렇다면 3대 종교 앞에 우리는 우리 고유의 종교가 무엇이었을까. 역사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하는 학생은 아마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수난과 약탈을 기록한 역사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다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교과서를 썼기 때문이다. 삼국의 고구려 때부터 불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를 숭배하는 삼신 신앙이 있었다. 삼신은 환웅, 환웅, 단군을 말한다. 이 세 분을 삼성이라고 하고 깨달으신 세 분의 성인이라는 뜻이며 이분들을 모신 곳을 삼성당이라고 불렀다. 고조선 시대에는 마을 회관 같은 마을 한복판에 그분들을 기리는 곳을 정하여 마을 회의도 하고 제례도 올렸다. 제단의 한 가운데는 밖에서 보이도록 대웅전이라고 썼다. 대웅은 우리말로 큰 스승이나 정신적 지도자라는 말이니 대웅전은 바로 그분들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주위는 무궁화 꽃으로 단장을 한 일종의 성소였다. 하지만 불교가 들어옴으로써 부처님을 모실 장소가 그들은 절실했고 백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쌀과 먹거리로 회유하고 창과 칼로 겁을 주어 마침내 삼성을 모신 대웅전에 부처님을 앉혀버리고 한인, 환웅, 단군, 삼성을 내쫓아버린 것이다.
이후 불교계에서는 이곳저곳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며 아름다운 곳곳에 사찰을 짓기 시작했고 사찰 한복판에는 과거에 쓰던 대웅전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으며 그 대웅전 자리에 계신 삼성 세 분을 절의 맨 위 적당한 곳에 버린듯이 두었다. 상당히 작은 방에 초라한 곳, 산신각, 내지 삼성각이라는 명명하고 방에다 모셨다. 지금도 산신각은 대웅전에 비하면 너무도 왜소하다. 완전히 내치면 화를 입을까 일말의 양심상 가책은 있었는가 보다.
지금이라도 절의 삼성각이나 산신각에 가보면 호랑이를 옆에 둔 단군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가 있다. 그렇게 불교가 들어온 후 산으로 몰리고 바다로 내쫓긴 할아버지는 점점 왜소해지고 추위를 타다가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미신이니, 비과학적이니, 귀신이 붙었느니 하면서 더욱 폄훼, 왜곡, 상처를 입고 결국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곳으로 내몰렸으니 그곳이 바로 당집이다. ‘무’라는 한자말은 아래, 위 땅과 하늘을 잇고 가운데 사람 인 자가 둘 들어있으니 이는 바로 ‘하늘과 땅의 이치를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알려주는 자’라는 뜻으로, 한 마디로 스승이라는 의미이고 그러니 무당은 스승님이 계신 집이라는 뜻이다. 무속신앙이라는 말은 그런 스승을 잘 따르는 민속이 생겼고 이것이 오랜 세월 동안 계승되어 민간신앙처럼 되었다는 말이다. 세상에 나쁜 종교는 없다. 다만 나쁜 종교인이 있을 뿐이다. 무당, 무속이라 함부로 부르고 폄훼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그의 원래 의미는 홍익인간과 연결되어 있으니 앞으로 쓰더라도 귀하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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