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걸레는 빨아도 행주로 쓸 수 없다
칼럼-걸레는 빨아도 행주로 쓸 수 없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2.07 17:2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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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걸레는 빨아도 행주로 쓸 수 없다

1960년대 초에 군에 입대한 고재봉 상병은 공관병으로 박병희 중령의 관사에서 지냈는데, 박병희 중령 가족들은 고재봉을 머슴처럼 부려먹었다. 장작을 패게 하고, 물을 길러오게 하는 등 말 그대로 조선시대 머슴이나 할 법한 일을 시키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대대장 관사의 공관병이었던 고재봉 상병이 관사에서 일을 끝낸 후 서재에서 나오다가, 부엌에 고기 한 근이 신문지에 싸여있는 것을 보고 훔쳐 들고 나왔는데, 이것이 가정부(15세·여)에게 발각되었다. 가정부가 그를 보고 소리를 질렀고, 고재봉은 옆에 있던 도끼로 “이걸 알리면 죽이겠다”며 가정부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가정부는 이를 그대로 박병희 중령에게 알렸고, 박병희 중령은 그동안 관사에서 사라진 물건들도 전부 고재봉 상병이 훔쳤다고 간주해 절도죄로 육군교도소에서 징역 7개월을 복역하면서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았고, 출소하자 1963년 10월 19일 박병희가 있던 관사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박병희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고 그 자리에는 신임 대대장 이득주 중령 일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를 미처 몰랐던 고재봉은 엉뚱한 이득주와 그의 부인인 김재옥(교사) 그들의 자녀 9세·5세·3세·가정부 등 총 6명을 도끼로 참혹하게 살해하였다. 고재봉은 귀금속 등을 훔쳐 서울로 도주했지만 검거되었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 선고 다음 해인 1964년 3월 10일 경기도 부천에서 총살형(28세)이 집행되었다.

근래의 정치사를 되돌아보니 K 시장 아내는 2016년 여성 공무원 2명을 운전사 겸 수행비서로 각종 행사에 데리고 다녔다. 이들은 시장 배우자 일정이 있을 때마다 출장계를 내고 개인 차량으로 수행했다. 이런 일이 무려 200회를 넘었다. 광역단체장인 0 시장 아내는 2019년 미술관 관람을 위해 시장 관용차와 운전기사를 불렀다. 정기 휴관일에 혼자 관람해 ‘황제 관람’ 논란까지 일었다. P 시장 아내는 각종 행사 때마다 시청의 실무 과장을 의전 비서로 데리고 다녔다. 과장은 시장 아내를 밀착 수행하면서 참석자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K 도지사는 아내가 관용차를 사용하고 도청 직원을 가사 도우미로 쓴 사실이 드러나 총리 후보에서 사퇴하기도 했다. 전 청와대 경호처장도 직원을 관사로 출근시켜 집안일을 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H 군수의 아내는 2015년 지인의 아들을 군청 공무원으로 채용해 주겠다며 수천만 원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K 도지사는 “도청 인사는 아내 손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국회 보좌관 L씨는 의원실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의원이 아니고 그의 아내였다고 했다. A 시장 아내는 2016년 남편과 8박 9일 동안 유럽을 다녀오면서 비즈니스 왕복 항공료 8백여만 원을 시에 떠 넘겼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아내 김혜경이란 여자가 경기도 5급과 7급 공무원 2명을 자기 비서처럼 부렸다고 한다. 5급 배 모씨는 이 후보의 변호사·성남시장 시절부터 함께한 오랜 측근으로 사실상 수행 비서였다. 7급 공무원 A(여)는 “일과의 90%가 김혜경 심부름이었다”고 실토했다. 논란이 일자 이재명 후보의 해명이 “공관 관리 업무를 한 공무원의 일”이라며 선을 긋자 “이 후보 부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관여한 바 없다는 식의 입장은 말도 안 된다. 어느 순간 내가 다 뒤집어 쓸 것 같다는 판단이 돼서 모든 통화 내용을 다 녹음했다. 저희 가족은 심각한 불안과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큰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2014년 2월에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도에 있는 염전에서 지적장애인 채모(48세)는 소개업자의 뀜에 빠져 염전에 와서 5년 2개월 동안 임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폭행을 당하면서 노예처럼 강제 노역 생활을 했다. AP통신 등의 주요 외신은 소위 ‘염전 노예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한국은 아직도 노예제가 실존하는 국가’라는 식의 기사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부하 장세동은 감옥을 몇 번 가면서도 “다 내가 했다고”하는 충성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 후보자는 폭로한 공무원이 ‘배신자’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부려먹고도 자기사람으로 만들지 못한 부덕함의 소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신문기사를 보고 내 눈이 오염될까 해서 신문지를 불태워버렸다. 한국은 아직도 노예제가 실존하는 국가인가? 걸레는 빨아도 행주가 될 수 없음은 근본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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