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질(quality)의 철학
아침을 열며-질(quality)의 철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2.15 17: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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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질(quality)의 철학

민감한 ‘비교문화론’을 하나 건드려보자. 여유시간에 TV에서 중국과 일본의 드라마를 보다가 좀 착잡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만만치 않은 그 ‘수준’ 때문이다. 일단 그 배경에는 중국과 일본을 휩쓴 우리 한류의 엄청난 인기라는 시대적 사건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을 한껏 높여줬다. 중국과 일본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저들의 그 드라마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혹은 ‘우리에게는 없는’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건 한 번쯤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문화현상이지만 문화가 곧 경제요 인생인 우리 시대에서는 그 ‘질’이라는 것이 하나의 철학적 주제가 되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는 특히 의상, 장식, 배경 등에서 보이는 웅장함과 화려함이 있다. 소위 황궁과 귀족의 저택뿐만 아니라 상가가 늘어선 거리의 풍경에서도 그 웅장함과 화려함-고급스러움은 우리의 것을 압도한다. 연출, 연기, 스토리 등도 보통 수준이 아니다. 내가 본 ‘랑야방’ ‘사마의’ ‘청평악’ ‘녹비홍수’ 등 모든 것에서 확인된다.

일본의 경우는 특히 거리, 가게, 음식 등에서 보이는 그 깔끔함과 철저함 그리고 품격이 있다. 가끔씩은 그 장면에 출장 등의 설정으로 우리 한국이 함께 등장하기도 하는데,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저들의 깨끗하고 깔끔한 환경은 우리를 압도한다. 시골 어디도 예외가 없다. 내가 도쿄에서 살았던 198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본 ‘고독한 미식가’ ‘낚시바보 일지’ ‘한자와 나오키’ 등에서도 그것은 여실히 확인된다. 거의 유럽 수준이다. 19세기 후쿠자와 유키치의 구호였던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들어가자)’가 일정 부분 현실이 된 모양새다. 그럴 땐 마음이 아주 불편해진다.

우리의 한류는 분명히 대단하다. 따라서 자랑스럽다. 그러나 상대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중국은 어쨌거나 객관적으로 G2요 일본은 G3이다. 우리와 국경을 맞댄 이웃들이다. 그 점을 우리는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요즘 대략 G10으로 평가되고 있고 우리는 그 점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만, 거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나는 이미 여러 기회에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우리의 목표는 G1이어야 한다. 세계최고다. 황당한 헛소리가 아니다. 삼성, 엘지와 BTS 등이 증명하듯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 비책이 바로 ‘질적인 승부’다. ‘질’ 내지 ‘수준’에 신경 쓰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을 먹지 않는 게, 즉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 결과가 ‘저급’ 내지 ‘저질’이다. 그게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우리 주변엔 아직도 그런 것이 많다. 그런 것을 철학에서는 ‘문제’라고 부른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모든 분야, 모든 제품에서 그런 ‘무신경한 저질’이 눈에 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사람’이고 사람의 ‘정신’이다. 그게 말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그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려 있다. 도로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뉴스에서도 무수히 발견된다. ‘남의 시선’ ‘남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나’와 ‘패거리’의 이익만이 모든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된다. 이런 저질, 저급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보편적 저질화를 야기한 그 원인의 대략은 이미 드러나 있다. 그 중 하나가 교육의 붕괴, 교육의 부재다. 시비선악을 포함해 ‘질’ ‘수준’ ‘고급’에 대한 가치관이 사라졌다. 우리 시대의 유일·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린 ‘돈’이 이런 것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는 소위 ‘인문학’이, 특히 문·사·철이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가치방향을 우리들에게 제시했다. 그 숭고한 정신활동이 작금에 이르러서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거의 빈사상태다. 그런 가치의 회복 없이 우리가 중국과 일본을 추월하는 것은 단언하건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저들의 하수로 살아도 상관없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면, ‘최소한 중국보다는 나은’, ‘최소한 일본보다는 나은’이라는 나의 기준에 동조해주었으면 좋겠다. 경제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원리는 간단하다. 고급스러운 것이 가격도 비싸다는 것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제대로 고급이어야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모든 면에서 고급스런 완벽을 추구 혹은 지향해야 한다. 나는 우리의 조국이 이윽고 유럽과 미국을 넘어 세계최고의 ‘질적인 고급국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나 자신이 우선 ‘고급 인간’이 되는 게 그 첩경이다. 고급인간이 되자. 누구든, 좌든 우든 상관없으니 대통령 후보가 이런 것을 정책지표로 삼아줬으면 좋겠다. 국가와 국가의 미래라는 것에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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