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단 하루를 산다 해도 즐겁게
현장칼럼-단 하루를 산다 해도 즐겁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2.17 17:1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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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태/창원본부 취재본부장
최원태/창원본부 취재본부장-단 하루를 산다 해도 즐겁게

요즘 우리는 길을 걷기가 열풍이다. 거기에 부응해서 지자체들은 곳곳에 길을 냈다. 예컨대 남해 바래길, 제주도 올레길, 북한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여주 여강길, 강화 나들길, 동해안 해파랑길, 강릉 바우길, 대전 갑천누리길, 군산 구불길,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소백산 자락길, 경북 외씨버선길, 안동 유교문화길, 경기도 평화누리길, 충남 내포문화숲길, 목포 유달산둘레길, 백두대간의 길고 험준한 길들이 났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어느 길 위에 있을 수 있다.

시인 천상병의 ‘바람에도 길이 있다’란 시가 있다. ‘바람에도 길이 있다/강하게 때론 약하게/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아니다! 그런것이 아니다//보이지 않는 길을/용케도 찾아간다/바람길은 사통팔달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바람은 바람길을 간다/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길은 어디에나 나 있다. 언제나 길을 갈 수 있다. 못 갈 곳이 없으리만큼 길은 다양하게 뻗어 있다. 세계 최초로 북극점을 발견한 미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의 묘비에 새겨진 그의 좌우명은 이렇다. ‘나는 반드시 길을 찾을 것이고 없으면 만들 것이다’. 길이 없으면 탐험가처럼 길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인생길은 그렇지 않다. 다 바른 길은 아니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의 저자는 “인생이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끝은 보이질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신기루를 쫓기도 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동안에는 언제 건너편에 다다를지 알 수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많은 부분이 그 모습과 닮았다”고 썼다.

참 길, 옳은 길은 찾기 어렵다. 다 생명의 길, 천성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도리어 사악하고 멸망에 이르는 악의 길, 넓은 길, 타락의 길, 저주의 길이 더 많다. 그러나 좁은 길이지만 유일한 길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글귀가 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不須胡亂行(백수호난행,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이)/遂作後人廷(수작후인정,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조선 후기 이양언의 시다.

내가 디딘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된다. 길을 물어보는 것은 삶의 지혜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야 한다. 길을 묻고 그 길을 따라 갈 때 옳게 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길을 간다. 오늘도 허무한 길을 걷다가 길 잃은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도 숨 쉬는 하루가 흐른다. 인생길 남은 시간을 담아놓을 수 있다는 희망의 시간이 나를 위함인 것인들 무엇 하나 미련도 기억도 남길 수 없다는 생각에 오늘도 조금은 슬프다.

어디까지를 살아 숨 쉬는 걸까? 남은 시간, 어떻게 좋은 느낌을 주는 참 된 인간의 모습으로 남길까? 틈이 보이는 공간 속 생각에 잠긴다. 하루를 산다고 해도 멋지게 살고 짧은 순간만이라도 타인으로부터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프리카 스탠리 죤스는 정글 한복판을 탐험하며 좋은 경험을 했다. 가이드가 키가 큰 잡초와 무성한 덤불을 칼로 자르며 길을 안내했다. 아무리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더위와 피로에 지친 자가 묻는다. “여기가 어디요? 도대체 어딜 가는지 알고나 가는 거요? 길은 어디 있소?” 노련한 가이드의 대답이다. “제가 바로 길입니다” 우리의 노련한 가이드이실 뿐 아니라 그 분 자신이 길이시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그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은 또 다른 이에게 길이 되어준다. 나도 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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