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서울을 위한 미학
아침을 열며-서울을 위한 미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3.03 17: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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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서울을 위한 미학

‘도시미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아마도 많은 학문적 이론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과 무관하게 이 주제를 한 번 건드려 보자.

미학이란 기본적으로 가치론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좋은 것’으로 전제한다. ‘좋다’-‘나쁘다’(아름답다-추하다)는 것은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객관’이고 ‘아프리오리’다. 선천적인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선천적으로 우리의 이성에 내재한다는 말이다. 누구나 미인이나 꽃은 아름답다고 탐하고 쓰레기나 배설물은 더럽다고 꺼리는 데서 그것은 일단 증명된다. 물론 구체적인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판단은 ‘취미/취향(Geschmack)’이라고 칸트는 말했다. 그래서 좋다-나쁘다는 것을 칼로 무 자르듯이 나눌 수는 없으나 그래도 대체적인 판단은 존재한다.

종류는 좀 다르지만 ‘일반이성’이라는 것이 그것을 판정한다. ‘누구나-대개’ 그렇다는 것이다. 바로 그 일반이성이 우리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만든다. 도시미학에도 그것이 적용된다. 무수한 사람들이 파리나 주네브 등 소문난 관광지를 찾는 것도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것이 경제로도 이어진다. 이래저래 우리가 아름다운 도시를 가꾸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도시 서울은 어떤가. 제법 선호되는 관광지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선진 여러 나라의 도시들에 비해 아직 결코 자랑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예전에 비해 ‘깨끗함’에서 일정 수준에 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 상위권은 아직 아니다. 그밖에도 아쉬운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어지러운 전선들도 그 중 하나고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난잡한 간판들도 그 중 하나다. 대중식당들의 어수선한 내부도 그 중 하나다. 다 개선되어야 할 것들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건축물이다. ‘서울’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미학적 건축물이 없다. 파리의 에펠탑/개선문,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세계무역센터 빌딩, 런던의 빅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같은 건축물이다. 로마에는 고적 전체가 그런 것에 해당하고 독일에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등이 그 역할을 한다. 베이징에는 천안문을 위시한 자금성이 있고, 도쿄에도 스카이트리가 있고 오사카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독특한 ‘오시로(城)’가 있다. 이스탄불에는 성 소피아 사원이 있고 인도에는 타지마할이 있다. 모스크바에는 성 바실리 성당/크렘린 궁전이 있고 두바이에는 부르즈 칼리파가 있다. 서울에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이 없다.

우리에게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의식 내지 미적 의지가 없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강 한복판에 놓인 노들섬을 그런 건축물을 위한 최적지로 판단한다. 전전 서울시장은 거기에 오페라하우스를 계획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백지화되었다. 그 대신에 들어선 건축물은 초라하기가 짝이 없다. 땅이 아깝다. 거기에 만일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고 가정해보라. 전 세계인의 뇌리에 새겨질 서울의 상징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 주변에 관광선을 띄우면 그 관광수입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남산타워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그것 대신 사웅 파울로의 거대 예수상 같은 것이 있다고 가정해보라. 역시 서울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런 것은 도시 자체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킨다.

선진제국에 비해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미학적 가치는 웅장함과 화려함이다. 노들섬에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한 무언가를 세웠다고 미국이 뭐라 하겠는가, 중국이 뭐라 하겠는가.

작금의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고 다시금 중국인을 비롯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서울을 찾았을 때, ‘우와’ 하는 환성을 자아낼 만한 그런 건축물이 세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의식 있는 사람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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