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철학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다
도민칼럼-철학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4.24 17: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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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석/시인
윤창석/시인-철학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다

이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면 결혼 파탄이 올 것이 분명하다. 처녀는 늦게 가야할 사주에 재혼 살이 있으니 이 결혼은 처녀 운땜할 결혼이다. 처녀는 두 번 시집갈 운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결혼을 해도 좋다고 하면 결혼 후 파탄이 생겨 이혼을 하게 되면 나는 돌팔이로 그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럴 때 참으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결혼해서 헤어지는 것보다 결혼 전에 헤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 이럴 때 뭐라고 말씀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궁합도 나쁘고 처녀도 늦게 시집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결혼하라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일찍 정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처녀의 어머니도 내 말뜻에 따라 “글쎄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언니도 있고, 좀 기다렸다가 좋은 배필 나오면 결혼해도 늦지 않은데 저리 서두릅니다” “안 좋은 결혼 하는 것보다 어머님 말씀 듣고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네요” “총각이 너무 잘 생겨서 우리 딸이 폭 빠져서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처녀 엄마는 내 말에 수긍이 가는지 딸의 눈치를 보면서 달래 본다. “선생님 말씀대로 하자” 그 소리를 들은 딸은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는 나가 버린다. 그 처녀는 문 밖에서 ‘흑흑’하고 울고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처녀는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겨우 달래서 보냈는데 뒤에 들은 이야기가 처녀가 총각을 만나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고 한다. “우리 둘은 결혼하면 반드시 헤어질 운명이고, 나는 재혼할 팔자라고 하더라” 총각은 처녀가 한 말을 듣고는 분을 참지 못하고, “개새끼 소새끼 돌팔이” 하면서 온갖 욕설을 다하고 항의하러 오는 것을 처녀와 처녀 어머니가 겨우 만류를 했다고 한다.

처녀는 그 길로 마음에 병이 생겨서 오래토록 고생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앞으로 절대로 어떤 사람이 와도 운명감정은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 그동안 보배처럼 간직하고 있었던 책들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사십년이 넘도록 보아왔던 책들이 없어지고 나니 너무나 허전하고 후회스러웠다.

새 집을 지어 지하에 다방을 세 줄 때다. 다방 마담으로 온 여인이 있었다. 다방 마담치고는 못생긴 얼굴이다. 입이 크고 피부색도 거무티티했다. 촌 여자처럼 생겼는데 마음씨가 착하고 정직했다. 그 다방에 조선소에 근무하는 총각이 많이 왔는데 그 중에 꽤나 괜찮은 총각이 있었다. 이 총각이 마담에게 반해서 매일 저녁 다방에 나왔다. 마담은 조선소에 다니는 총각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해도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처신이 그런 남자와는 결혼 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사실을 고백했지만 총각은 그래도 좋다면서 결혼 승낙을 받아 내려고 매일같이 다방에 왔다. 마담생각은 차배달이나 하는 천한 여자로 알고 자신을 성적 노리개감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그 총각이 자주 오는 것이 싫었다. 저녁이면 다방에 와서 마담을 주시하는 그 총각이 겁이 난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나한테 해결 방법을 문의하러 올라왔다.

“내가 결판을 내어줄 터이니 같이 가자”며 마담을 앞세우고 지하로 내려갔다. 자주 본 그 총각은 다방 안쪽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총각 실례를 좀 하겠소”하고는 앞자리에 앉았다. 총각은 갑작스런 내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예절을 잃지 않았다. 나는 느닷없이 “총각! 저 마담과 결혼하자고 했다면서” 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 결혼하고 싶습니다” “저 여자가 이혼녀란 것을 아는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맘에 들어서 저 여자 아니면 어떤 여자라도 결혼 안 합니다” “저 여자의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빠져 있는지?” “처음 볼 때 저의 어머니처럼 정감이 갔습니다, 나도 모를 정도로 자꾸만 좋아집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담도 이 총각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주를 풀어 보고 궁합을 보니 겉궁합 속궁합이 천생연분이다. “꼭 결혼을 하겠다고 결혼서약서를 써주면 내가 입회를 하고 결혼 주선을 하도록 하지” 총각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결혼 서약서를 자필로 섰다. 그 후 총각과 몇 번 만나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며 회사 이야기 등 정담을 나눴다. 만날수록 믿음이 가는 총각이다 마담도 그 총각을 믿게 됐다. 그 해 가을에 양쪽 부모가 만나서 상견례를 다방에서 올리고 결혼 날짜를 내가 잡아줬다. 결혼식이 끝나고 조선소 근방에 방을 얻어 신혼살림이 시작됐다. 아들딸을 낳고 살면서 우리 집을 친정처럼 다녔다. 지나간 추억의 한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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