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Ⅰ)
칼럼-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5.30 17:2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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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Ⅰ)

본관 안동(安東). 본명 김병연(金炳淵:1807~1863·56세). 자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고도 부른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반군들에게 붙잡혔다가 겨우 살아나왔다. 그런데 그 후 김익순은 반군 장수 김창시의 목을 돈을 주고 사서 자신의 전공(戰功)인 양 처리하려다가 발각되어 처형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일가‘멸족(滅族)’의 형벌을 받았다가‘폐족(廢族)’처분으로 사면되어, 멸문지화는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폐족’이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공민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사회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는데 이곳에서 아버지(김안근)가 화병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자식들을 이끌고 다시 강원도 영월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문의 내력을 숨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25세 때 영월 감영에서 개최한 백일장에 응시하여 장원(壯元)을 하였는데, 그때 주어진 시제(試題)가 ‘논, 정가산충절사 탄, 김익순죄간천(論, 鄭嘉山忠節死 嘆, 金益淳罪干天)’으로 홍경래의 난 당시‘가산 군수 정시의 충절을 기리고, 선천 부사 김익순의 하늘까지 사무치는 죄를 통탄한다’는 내용이었다. 자기 가문의 내력을 모르는 병연은 피 끓는 젊은이의 기개로 김익순의 죄상을 공박하는 글을 써서 장원을 한 것이다. 어머니는 결국 한 많은 집안의 내력을 병연에게 알려주게 되었다. 병연은 자신의 부질없는 글재주가 조상을 욕되게 하였고‘폐족’가문 출신으로 양명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익힌 학문이 도리어 고통의 불씨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翼均)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同福:전남 화순)에서 객사(客死)하였다. 유해는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 기슭 와석골 노루목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있다.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다음은 김삿갓이 쓴‘나와 삿갓’이다. 내 삿갓은 정처 없는 빈 배/한 번 쓰고 보니 평생 함께 떠도네!/목동이 걸치고 송아지 몰며/어부는 그저 갈매기와 노닐지만/취하면 걸어두고 꽃구경/흥이 나면 벗어 들고 달구경/속인들의 의관은 겉치레, 체면치레/비가 오나 바람 부나 내사 아무 걱정 없네! 김삿갓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야말로 백두산을 제외한 조선팔도 이곳저곳을 누볐으며, 때로는 한곳에 머물며 훈장 노릇을 하여 후학을 기르고 숙식을 해결했다. 그는 높은 문장으로 당시 조선 사대부들의 악덕과 부정부패, 조선 사회에 존재하던 폐해 따위를 비판하여 듣는 이의 동조를 이끌어내었으며,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노래로 풀어내어 부르는 것으로 명망이 있었다. 강릉에서 방랑 첫해 겨울을 보낸 병연은 봄이 오자 동해 바닷가를 따라 북상하며 방랑 행각을 계속하였다. 낙산 관음굴에서 자살하려는 여인을 말리며 지었다는 시에는 병연의 천재성이 잘 나타나 있다.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風打支竹浪打竹(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반반죽죽생차죽) 是是非非付被竹(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이런 대로 저런 대로 세상 되어가는 대로 살고,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물결치면 치는 대로 삽자. 밥 있으면 밥을 먹고 죽 나오면 죽 먹으면서 살아가고, 옳은 것은 옳은 대로 틀린 것은 틀린 대로 놔둡시다.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하는 것 시장에서 장사는 시세대로 하는 법,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지냅시다. 구미(句尾)에 빠짐없이 대나무‘죽(竹)’자를 나열한 것도 특이하지만, 여기서는 우리말 뜻인‘대’로 읽어서 시를 지은 천재성이 가히 놀랍도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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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진 2023-07-21 23:08:18
너무 좋은 칼럼 잘 봤습니다. 우연히 구글링하다가 보게 되었는데 좋은 내용만 가득한 칼럼이네요 제가 아직 학문이 짧아 칼럼의 내용을 완전히 깊이 이해하진 못했지만 다 알지 못하는 부분도 내용이 참 좋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낍니다 교수님은 칼럼의 이런 전문적인 부분은 어떻게 조사하시는 건가요?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교수님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