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아침을 열며-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6.15 17: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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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우리는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말이 많은 세상이지만 말로 인해서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스트레스를 풀 때도 말로써 풀고 노래를 부를 때도 말로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 좋은 말을 많이 쓰는가 좋지 않은 말을 쓰는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요, 인격이며 인품이기 때문이다.

말은 마음의 알맹이라는 뜻이다. 마음과 알맹이, 알갱이의 합성어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말은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세상만사가 말에 의해서 시작되고 끝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마음은 몸과 다르지 않다. 서양의 마인드와 바디는 서로가 멀리 떨어진 듯한 느낌이지만 우리말의 마음은 몸과 같다. 몸 가는데 마음 가고 마음 생기는 데 몸이 있다. 몸이라는 글자를 파자하면 가운데 ‘ㅗ ’를 아래아로 바꾼 다음 다시 옆으로 연결하면 마음이 되고 마음 자로 역으로 뭉치면 몸이 되는 원리이다.

글은 그 와 얼의 합성어이다. 그 사람의 정신을 기록한 것이다. ‘걸’ 이라고 쓰면 이상하니 ‘글’로 표현한 것이다. 한자는 한국 사람이 쓰는 글자이고 한문은 한국 사람이 쓰는 문자이니 둘 다 우리 것으로 시작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말씀은 말을 쓴다는 뜻이고 말씨는 말의 씨앗을 말한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으니 늘 말함에 주의가 필요하다. 사람은 살과 앎의 합성어이고 살은 건강한 육체를, 앎은 양심과 지혜를 한가운데에 두고 있는 지성을 의미한다. 영어 휴먼에는 이런 철학적 고찰이 없다. 말과 행동은 그 나름대로 일정한 에너지를 담고 있으므로 우리가 늘 쓰는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죽는다는 말을 자주 써 왔다. 맛이 있어 죽겠다. 이뻐 죽겠다. 고마워 죽겠다. 사랑스러워 죽겠다. 등이 있고 심지어 유행가 노래에도 “아주 그냥 죽여 줘요”한다. 그래서인가 우리나라 자살률은 선진국에서 단연 선두이다. 말에서 나타나는 에너지가 실제로 일상 생활에서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알 수가 있다. 이런 것도 있다. 열 받는다. 뚜껑 열린다. 돌아버리겠다는 말들이 난무한다. 유난히 산불 등과 화재가 자주 나는 이유가 다 부주의한 수치라고 하지만 우리가 늘 쓰는 말의 결과가 이렇게 연결되고 있음을 어찌 간과할 수가 있겠는가. 돌겠다는 말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말이고 조현병이 대표적이다. 평소 돌겠다는 말을 자주 하니 주변에 조현병 환자와 우울증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이들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속적이며 대중적인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IMF 사태이다. 그 사태 직전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중, 즉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떨어진 바지를 참 많이도 입고 다녔고 지금도 가끔 보인다. 상당수가 멋으로 여기고 거지처럼 된 옷을 좋아하며 입고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거지처럼 되었고 정신을 차린 후 바로 설 수 있었고 그 이후 그 바지는 또 눈에 많이 띄지 않았다. 누적된 행동이 우리 생활에 이렇게 변질된 형태로 나타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또 있다. 요즘 아이들은 소변본다. 대변본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주로 똥 싼다. 오줌 싼다고 말하고 친구들끼리 모여 한턱내려고 할 때도 내가 쏜다고 말한다. 주로 전투적 개념이다. 오락게임에서도 주로 칼과 총을 쓰고 닥치는 대로 부수고 때린다. 그래서일까 전쟁이 지구상에서 공공연히 발발하고 있다. 언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종전할지 알 수 없고 부근에서도 전쟁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화합과 조화를 위한 프로그램보다 파괴와 분열의 에너지가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말을 정화해야 한다. 본래의 좋은 말을 써야 한다. 유행어는 대중 속에서 집단 무의식으로 자리 잡아 언젠가는 그 에너지를 쓰려고 도사리고 있다. 좋은 말은 좋은 사람을 만들고 좋은 사람은 좋은 말을 한다. 그래서 그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 되는 것이다. 내친김에 한 걸음 더 가보자. 부부 사이에는 여보 당신이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아내가 남편을 보고 ‘오빠’ 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을 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한다면서 쓰는 것이다. 단둘이 있으면 친근감의 표현으로 어떤 말을 쓰던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아이들이 있고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 오빠라고 하면 그 둘 사이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보고 ‘외삼촌’ 이라 불러야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가자면 교통 주의 표지판을 보면 절대 감속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원래 필히, 내지 반드시나 꼭 감속으로 써야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우리말로 된 아리랑이 세계인들이 부르는 가요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참 자랑스러운 일이다. 아리랑은 나를 알아가는 이치는 깨닫는 거룩한 노래이다. 이 노래가 궁금하여 우리나라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아리랑을 신나게 한번 불러서 우리의 신명을 불러 일으켜 보자. 지금부터 오늘부터 말을 잘 써서 복과 행운을 가져오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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