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산색(山色)
도민칼럼-산색(山色)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07 12: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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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교무처장-산색(山色)


올해는 장마가 7월 26일까지라고 한다. 아직도 축축할 날들이 보름이나 남아서 레인부츠를 하나 장만해 두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렇게 무언가를 예상하고 앞으로를 준비한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소확행이라고 하던가! 촌에 살면서 집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장마는 평소 읽지 않은 책이나 영화를 보기에 딱 좋은 날들이다. 책장을 보니 얼마 전 열반하신 연관스님의 번역본들이 있다. 그 중 스님이 좋아하셨던 중국의 선사 운서주굉 연지대사의 <죽창수필>이 눈에 띈다. 운서주굉은 중국 명나라때 사람으로 지혜로웠으나 과거(科擧)에 나가지 않고 청렴하게 살았다고 한다. 스물일곱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른한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출가를 결행한 분이다. 출가 전 부인 탕씨와의 일화에는 차를 마시다 찻잔을 바닥에 던지고는 깨진 찻잔의 파편을 보며 ‘세상에 흩어지지 않은 인연은 없다’고 했다던가!

운서주굉의 죽창수필은 당연히 모두 한자(漢字)로 되어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번역본이나 그저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알기 쉽게 선별하여 풀어 준 책이 죽창수필을 완역한 연관스님의 <산색>이다. 산색은 출판사 호미에서 낸 선역본으로 죽창수필을 바라보는 스님의 견지도 엿볼 수 있다. 산색(山色), 말 그대로 산의 색깔이다. 본문 중에 인용하면 ‘가까운 산은 푸르스름한 것이 마치 남색인 것 같고, 멀리 보이는 산은 거무스레한 비취빛인 것이 마치 남색에다 청대(쪽으로 만든 검푸른 물감)를 물들인 듯하니, 그렇다면 과연 산의 빛깔이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산색은 다름이 없다. 다만 시력에 차이가 있어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차츰 멀어질수록 푸른빛이 비취빛이 되고, 먼 곳으로부터 차츰 가까워질수록 비취빛이 푸른빛이 되었을 뿐이다. (중략) 대게 모든 존재가 이와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우리 눈에, 우리 생각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뿐이니 뽐내거나 내세울 일이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모두가 1인 미디어시대, 각각의 생각과 주장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정보는 많아졌는데 판단하기는 더 어려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증명하듯,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덮치는 사이, 많은 어른들이 이승을 져버리셨다. 인터넷에는 그 분들을 존경하는 이들이 추모제를 한다고 올리는 글이 종종 보인다. 가보고 싶은 분도 있고 그런 사람을 다 추모해? 하는 이도 있지만 그리운 마음은 다 같은 것이기에 모두에게 공감이 간다.

연관스님의 <산색>에 ‘사람의 목숨’이라는 글이 있다. 어떤 스님이 병이 깊어 앓아누운 지 오래인데 정작 본인은 전혀 모르고 심지어 옆에서 걱정하면 불쾌해하며 남자는 생일을 맞기까지는 무사하다고 큰소리를 쳤던 모양이다. 이에 운서주굉 스님이 염불할 것을 권하자 생일 이후에 하겠다고 하더니 생일 바로 전 날 죽었다고 한다. 본문을 또 인용하자면 ‘아, 부처님이 “사람의 목숨은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고 하신 말씀은 건강한 사람을 위해 하신 말씀인데, 죽음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하고 쓰여 있다.

엊그제 일본의 수상이었던 아베가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우리나라를 무시한 아베를 좋아할 리가 만무하지만 한사람의 죽음에 대한 국가적인 예의도 있으니 감정적으로만 대할 일은 아니다. 도리어 그의 죽음으로 우익이 더 뭉쳐 그 옛날 관동대지진 때처럼 통일교를 빌미로 이상하게 확대될까도 두렵다. 개헌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일본, 항상 경계하되 드러나게 증오해서는 우리가 얻을 게 없다. 다만 자존심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욱이 한나라의 대통령은 우리의 대표인데 더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한 호흡에 생과 사가 갈린다. 죽창수필을 통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한 연관스님 같은 분들이 그리운 날이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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