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새롭게 변화했을 뿐입니다
현장칼럼-새롭게 변화했을 뿐입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7.17 16:54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원태/창원총국 국장
최원태/창원총국 국장-새롭게 변화했을 뿐입니다

세계 최대의 부자 빌 게이츠에게 성공하게 된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힘센 강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뇌가 좋은 천재도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화했을 뿐입니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최고 경영자였던 잭 웰치는 어디선가 이렇게 썼다. "조직 내부의 변화 속도가 조직 외부의 변화 속도보다 느릴 때 그 조직의 끝이 보인다" 거듭 거듭 변해야 한다. 변화는 모든 영역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변화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변화는 생명체의 존재 방식이어야 한다. 변화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

죽은 것은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변화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죽은 것은 자신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20년에 걸쳐 수백만 번의 운동역학적 실험으로 인간 의식의 에너지 수준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의 에너지 수준은 수치심에 싸여 있을 때라고 한다.

원시사회에서 수치스러운 짓을 한 사람은 추방된다. 추방은 곧 죽음이다. 수치심 다음은 무기력 상태 때이다. 빈곤, 절망, 자포자기로 사회적 낙오자, 나이든 노인, 치명적 만성 질병 소지자들이다. 무기력보다는 났지만 여전히 낮은 에너지 수준에 속하는 상태는 슬픔이다.

비탄, 공허, 후회와 우울 속에 살아가는 슬픈 단계다. 슬픔보다 더 낳은 상태는 두려움이다. 적에 대한, 죽음에 대한, 상실에 대한, 거절에 대한 등의 두려움의 상태다. 죽음의 에너지 수준을 0이라고 한다면 수치심, 무기력, 슬픔, 두려움의 순서로 조금씩 에너지 수준을 높여 가기는 하지만 그런 상태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한 에너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따라서 변화를 위해 다른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수준에 있을때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왜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는가? 사람들은 변화가 가지고 올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두려워한다. 기득권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기존에 만족한다. 미지가 불안하다.

자신감의 부족을 느낀다. 새로운 변화된 상태나 세상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변화는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것은 나 자신의 변화다. 세상이, 가정이, 직장이, 변화되기 전에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자기먼저다.

솔개의 예화를 보자.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최고 약 70년의 수명을 누린다. 이 솔개가 장수하려면 약 40년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한다. 40년이 되면 발톱은 노화되어 사냥감을 잡을 수 없고 부리는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도 두텁게 되어 매우 무거워 저 하늘높이 날아 올라갈 수도 없게 된다. 이때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

하나는 그냥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약 반 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새롭게 갱신하는 길이다. 부리를 바위에 쪼아대고 또 쪼아대어 그 부리가 다 빠지게 되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나온다. 새 부리로 이젠 발톱을 계속 뽑아낸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발톱이 나온다. 날개 깃털도 하나하나 다 뽑아낸다. 그러면 새 깃털이 나온다. 40세 이렇게 자기 갱신을 통해 다시 30년을 더 살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변화 그것만이 새로운 살 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