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천명(天命)을 알자
칼럼-천명(天命)을 알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7.18 17:1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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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천명(天命)을 알자

‘논어’〈양화편〉24장에는 타인에게 미움 받는 7가지 유형이 소개되어 있다. 첫째 惡稱人之惡者(악칭인지악자):타인의 나쁜 점을 들춰내는 사람, 둘째 惡居下流而訕上者(악거하류이산상자):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사람, 셋째 惡勇而無禮者(악용이무례자):용감하지만 무례한 사람, 넷째 惡果敢而窒者(악과감이질자):과감하지만 융통성이 없는 사람, 다섯째 惡徼以爲知者(악요이위지자):자기의 편견을 내세우면서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 여섯째 惡不孫以爲勇者(악불손이위용자):불손한 짓을 가지고 용감하다고 여기는 사람, 일곱째 惡訐以爲直者(악알이위직자):혹독한 말로 남을 공격하면서 곧다고 생각하는 사람. 2500년 전 공자와 제자 자공이 주장한 내용이다.

또 ‘논어’〈위정편〉4장에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三十而立(삼십이립):서른에 확고하게 섰으며,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마흔에 흔들리지 아니하였고,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쉰에 천명을 알았으며,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예순에 귀가 순해졌고,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일흔에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 지/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되어 주오/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 주오/가리워진 나의 길.

1980년 후반 20대 청년 가객 유재하가 부른 노래의 〈가리워진 길〉가사이다. 25세의 나이로 단 한 장의 앨범만 남기고 떠난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살아 있다면 올해로 육십의 나이가 된다. 25세의 가객보다 30년을 더 살아 오십 知天命(지천명)이 되고 육십 耳順(이순)이 되어도, 가리워진 그 길을 여전히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그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인지도 모른다.

공자는 사십을 不惑(불혹)이라 했다. 불혹은 ‘흔들리지 않음’이다. 특히 사람에 흔들리지 않음을 의미하고 있다. 공자는 나이 마흔 즈음에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지혜를 갖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공자는 젊어서부터 정치를 하고 싶어 했지만, 노나라 실세였던 삼환(三桓)의 저지로 오십이 넘어서야 가능했다. 전쟁과 패권이 넘치는 춘추시대였지만 예와 덕이 살아 있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을 천명으로 생각했던 공자는, 50대 초반에 왕의 부름으로 정치에 나서게 되었다. 공자의 천명은, 화평의 시대를 만드는 평화의 사도였다.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 정하는 것, 바로 지천명(知天命)이다. 그러나 이웃 제나라와 노나라의 실세였던 계씨(季氏)의 농간으로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50대 중반에서 60대 후반까지 14년 여 동안 일곱 개 나라를 떠돌아다니면서 풍찬노숙(風餐露宿) 이국에서 보내야 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무시 속에서 60대를 보냈다. 귀가 순해진다는 말은, 타인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고 열정과 천명을 가진 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간다는 의미이다.

천하주유(天下周遊)에서 돌아온 68세의 공자는 천명을 이룰 방법을 바꾼다.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나라를 바꾸는 방법은 더 이상 불가능해 졌기에, 방법을 바꿔 '춘추(春秋)' 를 쓰고 ‘시경(詩經)’을 편찬하고, 73세의 나이로 노나라 곡부(曲阜)에서 인생을 마쳤다.

현대인들은 19~20세에 대학을 진학하면서 비로소 학문에 뜻을 두고, 30대 중후반은 되어야 비로소 독립다운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갈등은 계속된다. 업무에서 오는 고민과 걱정, 사람들과의 갈등과 어려움으로 흔들릴 때가 많다. 요즘은 오십이 되어야 세상에 어느 정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 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 사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삶인가를 두고 고민한다. 젊었을 때는 오십이 되면 경제적인 안정에 자유로운 몸이 되어 편안하게 살아 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오십이 넘고 환갑이 지나도 불안한 직업과 들쭉날쭉한 수입의 흔들리는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삶에 흔들리고 돈에 흔들리고 사람에 흔들리고 살아가는 피곤한 삶의 연속이 계속되고 있다. 그게 바로 ‘나’이고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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