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인생은 80부터
도민칼럼-인생은 80부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7.25 17:1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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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인생은 80부터

인생은 60부터란 말은 내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미 들어왔던 말이다.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면서는 이 말은 오랫동안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왜냐하면 몇 십 년 전만 해도 환갑 나이가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몸이 노쇠해져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회갑을 맞는 사람은 오래 살았다며 가족들이 기념해주고 축하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주었을 것인가? 이처럼 회갑 때면 이미 죽거나 살아 있다 해도 몸은 늙어 움직이지 못할 형편인데 무슨 놈의 인생 설계를 60부터 짠다는 말이냐고 강하게 부인했었다.

지금 세상은 어느 한 사람 회갑 잔치를 열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칠순 잔치를 하려는 사람은 세상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이니 말이다.

얼마 전인 6, 7년 전에 어느 여자가수가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며 100세 인생이란 노래를 불러 하루아침에 인기스타가 반열에 올랐었다. 저승사자가 부르러 올 때마다 어떤 핑계라도 대서 살기 좋은 세상이니 더 오래 살다 저세상을 가겠다는 노랫말이다.

이처럼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니 죽지 않고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으로 인지상정이겠지만, 마치 천년만년을 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수십억 아니 수백억의 재산을 모아놓은 80 넘은 고령자가 쓰지 않고 모으기에만 혈안인 사람이 있다. 단돈 몇만 원이 아까워 쓰지 못하고 이웃이나 친구, 남에게 베풀기는 고사하고 가족과 자신에게 쓰기도 인색하니 말이다.

극락과 천국이 제아무리 좋다지만, 개똥밭에 뒹굴고 아등바등하면서 살더라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며 그곳에 가지 않겠다며 떼를 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다. 천년이고 만년이고 죽지 않고 영원히 이 땅에서 살기라도 할 것처럼 재물 모으기에 여념이 없으니, 마치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연상케 한다.

요즘은 평균 수명이 놀랍도록 늘어나 100세를 살고 혹은 10년을 덤으로 더 살 수는 있다지만, 120년은 살지 못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누구나 빈손으로 왔으니 죽을 때는 마찬가지로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니 가진 돈으로 적당히 즐기면서 세상살이 끝낼 때는 남겨놓은 재산을 어느 정도는 소비하고 인간답게 살다 가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옛날엔 환갑을 넘어 사시는 어른들이 남의 나이를 먹고 산다고 했었다. 70세가 넘어 살았다 치면 남의 나이를 10세나 더 먹었다는 말이다.

필자의 아버지가 40여 년 전에 82세 때 세상 떠나셨다. 남의 나이를 20세나 더 먹었다고 하시던 말씀을 들었었다. 그러나 요즘은 동네 경로당에 가게 되면 7, 8십 연세 되신 분들은 옛날에는 이미 저세상으로 갔을 나이지만, 노인 취급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놀랍도록 변화되었다.

선진 복지국가 대열에 올라선 우리나라는 먹고 자는 생활공간만 준비되어 있다면 굶어 죽을 염려 없는 살기 좋은 세상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너나 내나 100세 세상에 들어서고 보니 아무리 많이 가진 자도 더 가지려 애쓰고 아무리 나이가 많고 고령인 사람도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가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하기 몇 년 전 동네에선 최고령이신 94세 할머니가 계셨다. 그때 보면 다른 할머니들이 노시는 평상에를 가시지 않으셨다. 걷기 운동 차원으로 동네 뒷동산에 오르시면서 산 중턱에 운동기구마다 근육운동을 하신다고 했다. 폭염이 극성일 때는 산에 오르시는 것은 잠시 중단하시고 대신 동네 앞에 있는 대형할인점 로비에 들렀다가, 시청광장까지 걸어가신 후 2~3시간 걸려 돌아오시곤 했다.

그때 아파트관리 일하고 있을 때라 매일 할머니가 산책길에 나설 때마다 인사를 주고받다 보니 나와 친해졌던 어느 날이다. “할머니는 건강하셔서 100살이 아니라 120살까지는 충분히 사시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함부레!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시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다. 자기처럼 늙은 사람은 빨리 죽어야 주변 사람도 편하고 자신도 편타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일까? 진정으로 죽고 싶다면 벌써 오래전부터 정확한 시간에 산에 오르고 몇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으시고 당신 건강을 관리하시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계실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의구심을 발동케 하셨다.

‘인생은 60부터’란 말을 이제는 20년을 폴딱 뛰어넘어 ‘인생은 80부터’란 말로 변경해야 할성싶다.

국가에서 정기적인 건강검진으로 침투했던 병마를 찾아내 초전박살 해주니 체하거나 감기만 걸려도 걸핏하면 병원에 쫓아가 푼돈 얼마 내고 치료받는 세상이니 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가? 말이다.

그런데 전에 살았던 동네에 할머니께선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나이를 먹으면 죽어야 해.’라고 하셨던 말씀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고 있다.

혹은 7, 8십까지 사는 사람이 있었지만, 가물에 콩 나듯 했었다.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며 나그네 인생이란 걸 착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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