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공부(工夫) 잘 하는 법
도민칼럼-공부(工夫) 잘 하는 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07 12:1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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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교무처장-공부(工夫) 잘 하는 법


일찍이 학원 강사 십 년 수련을 해서 공부 잘하는 법을 좀 알기는 하는데 공부 잘하는 법을 말하기 전에 공부(工夫)는 왜 하는 걸까? 아니 왜 시키는 걸까? 사전의 해석으로 보자면 공부(工夫)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인데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하는 것에 큰 이의는 없는 듯하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므로 똑같이 나누며 살기가 어렵고 리더도 필요하니 공부로 점수를 매겨 높은 점수인 사람이 더 높은 지위도 갖고 더 많은 재화도 갖고 그러는 것에 대부분 이의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이의가 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한결같이 내 자식만은 나보다 좀 더 좋은 지위를 가졌으면 하고 돈 걱정도 좀 안 했으면 하고 상류 계급인 집안은 유지했으면 하고 뺏기지 않았으면 하니 점수를 잘 받는 공부(工夫)는 인간 필생에 꼭 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배운다. 강보에 쌓여 젖을 빨던 영아일 때는 모르겠으나 뒹굴뒹굴하다 뒤집기를 하고 나면 짝짜꿍 도리도리 그리고 걸음마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노는 것도 배우고 나누는 것도 배우고 어울리는 것도 배운다. 죽을 때까지 인간은 배우는 일을 한다.

논어의 첫 장에 나오는 말이 학이시습지 불역역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다. 이 말을 학원 강사 하는 내내 아이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헌데 학교 다니는 것이 1등인 아이조차도 매우 매우 즐거워서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학교는 배우는 것에 점수를 매긴다. 그러면 등급이 생기고 등급이 생기면 경쟁하게 된다. 1등은 여럿이 될 수 없다. 1등이 여럿 나오면 변별력 없는 나쁜 시험이 되고 만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학습을 시키고 점수를 매겨 누가 상급인지를 알려줘야 하는 곳이다. 논어의 다음 말인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 不亦樂乎(불역락호)!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 이런 말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친구가 찾아오면 공부가 안되고 남이 날 알아주라고 공부하는데 자족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공부해서 남 주나?’ 우리는 어릴 때 이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그렇게 배워서 그렇게 키운 우리 아이들이 지금 수업하는데 시끄럽다며 ‘우리가 돈을 얼마나 내는데 그깟 자기들 임금 시간당 400원 더 올려주라고 우리의 이 비싼 수업을 방해 하냐?’며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하는 세상이다. SKY대학을 나와야 SKY(하늘)의 지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배웠으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점수가 매겨져 얼마 이상의 집에 살면 상급, 집도 없으면 하급, 돈만 있다고 다는 아니라며 문화예술 인지도를 살짝 넣어 상류, 뭣도 모르면 하류, 그렇게들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재미난 것은 상급이라고 만족하지도 않고 상류라고 행복하지도 않은 모양인지 부자들 많이 만나는 조용헌 선생 말에 의하면 자산 300억 이상 가진 사람치고 약 먹지 않는 사람 보기가 어렵다는데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했던 걸까?

이제 다시 가만, 공부(工夫)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한자를 잘 보면 공(工)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비가 책임을 가졌으니 아비 부(夫)를 써서 하늘과 땅의 이치와 순리를 알고 책임지기 위하여 하는 행위가 공부가 아닐는지!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사실도 아니고 속도 비어있는 공(空)부였던 건 아니었는지? 점수는 잘 못 받아도 친구들과 잘 노는 아이가 잘 살더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 다 알면서 소위 SKY 나와도 방구석에서 술추렴이나 하고 세상이 자기를 몰라준다고 비관하다가 거뜻 하면(까딱하면) 고소장이나 남발하는 이들도 이 지리산에 더러 있는 것을 알지 않는가!

그런데 그 세계를 겨우 다섯 살 난 아이들 보고 시작하라고 한다. 일찍 시작해야 이 글로벌한 세상에 적응할 수 있다고 되지도 않는 말로 꼬드긴다. 왜? 잘 못 따라가면 나머지 공부 시키시려고? 사람을 일꾼으로만 보고 교육 시키던 것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로 끝나고 사람으로 행복하게 사는 전인교육으로 전환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많은 진보교육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이렇게 허망하고 슬플 때가 많은데 점수 잘 받은 어른들이 고작 줄 세우기 교육만 하려 하니 공부하는 시간이 많으면 무엇 하겠는가? 세계적인 석학이 많기를 하나? 알만한 이론가가 있기를 하나? ‘공부해서 남 주자!’ 말하던 전유성 선생님의 울림이 참 절실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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