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지식의 기원
아침을 열며-지식의 기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8.23 09: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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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지식의 기원

지식인이라는 말이 요즘도 유효한지 모르겠다. 우리 세대가 대학생이었던 저 1970년대에는 지식인이라는 것이 사회의 한 특별한 계층이었고 대학교수는 그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그들’은 소위 보통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는 특별한 지식의 소유자로서 자긍심이 있었고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들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바도 실제로 작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지식인의 현재는 어떠한가? 대학교수는 여전히 존재하고 오히려 대폭 늘어났지만, 특별한 지식인으로서의 위상은 거의 사라졌다. 자긍은 자조로 바뀌었고 존경은 경원으로 바뀌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려면 적어도 논문 한 편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선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른바 ‘지식’이라는 것의 기원이 보편화-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지식인이나 소위 일반인이나 그 앎의 내용과 습득방식에 별 차이가 없다. 대학교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민이 거의 똑같은 조건에서, 통용되는 거의 대부분의 지식을 습득한다. 신문, 방송, 인터넷이다. 특히 유튜브, SNS, 그리고 입소문 등등이다. 거기서 가벼움과 얕음과 거칢은 불가피하다. 다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표피적인 인기영합성 언어로 그 내용을 구성한다. 지식인이나 일반인이나 이 조건이 거의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이른바 고전의 지식이 현재의 지식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그 앎의 출발점이 ‘문제 그 자체’였고 그 문제에 대한 깊은 인간적 고민이 숙성의 과정을 거쳐 그 발언자에게 체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지식의 언어들은 마치 긴 세월 체액으로 빚어낸 진주알처럼 영롱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표적인 고전적 지식인이 저 공자-부처-소크라테스-예수(가나다순) 같은 인물들이었다. 그 언저리에서 소위 문-사-철이라는 인문학이 지식의 왕좌를 보필했다.

이제 이 시대는 그런 지식들을 미련 없이 과감하게 폐기처분하고 있다. 인류는 저 하이데거가 알려줬던 ‘세인(das Man)’으로서 그 3대 특징인 수다-호기심-모호성(재잘재잘-기웃기웃-대충대충)을 여지없이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그 얄팍한 언어들을 지식으로서 생산-유통-소비하고 있다. 전파가 거기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지식의 유력한 기원이었던 ‘책’이라는 것이 우리네 삶의 공간에서 멀어진 것은 이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나마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이 신문이었는데, 이젠 그 마저도 사람들이 읽지를 않는단다. 젊은 세대는 특히 그렇단다. 10년 후 20년 후가 어떨지는 불문가지다. 명약관화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글자는 영상으로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다. 예컨대 블로그도 유튜브, 틱톡 등으로 이동한다. 그 영상언어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물론 안 된다. 그것이 위대한 문화영역의 하나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적 지식의 신기원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콘텐츠 즉 내용이다.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내 가장 가까운 지인 중 하나는 요즘 교수직을 은퇴한 후 유튜브 제작에 열심이다. 외국의 좋은 작품을 번역해 그것을 원문과 함께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21세기형 지식인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원으로 삼아 자신의 ‘지식’을 늘려갈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대학교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지식인으로서 그 지식을 퍼트릴 것이다. 저 1970년대의 지식인, 대학교수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과 환경이 지금 모든 일반인에게 갖추어져 있다. 이런 방향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아마도 무의미할 것이다. ‘시대’라는 핑계가 인간의 모든 잘못을 사면할 수는 없겠지만, 또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그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다. 그 흐름을 타고 이제 지식도 변모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이 칼럼도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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