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농자는 천하지대본
도민칼럼-농자는 천하지대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8.22 16: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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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농자는 천하지대본

불청객인 봄 가뭄이 근래에 단골손님처럼 찾아온다. 지난봄에도 5월 끝자락에서 6월로 건너뛰어 여름이 시작되는 때였다.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어 건조한 탓에 울진에서 산불이 일어나더니 바로 이어 밀양에서도 바싹 마른 나뭇잎이 쌓여 불쏘시개 역할을 해 대형 산불로 번져 지역민과 국민이 애태웠던 TV 뉴스를 접했었다.

이처럼 옛날에는 봄 가뭄이 왔을 때는 산불 위험도 있었으나 물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했으니 여지없이 흉년이 들고 말았으므로 힘든 보릿고개를 끙끙 앓으면서 넘어야 했었다. 그러나 요새는 곳곳에 보를 막아 농업용수로 쓸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데다 일손이 여유가 없어 강물이 닿지 않은 천수답은 모를 내지 않아도 식량이 모자라지 않는 세상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봄 가뭄이 계속되면 논에 물을 퍼 올리느라 농부가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지만, 요즘은 물이 없어 모를 내지 못한다며 넋두리하는 농민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현대화된 농사방식으로 봄에 논갈이에서부터 모내는 일과 농약을 치며 거두어들이는 일까지 기계가 척척 해내고 있으니 살기 편한 세상이다.

4, 5십 년 전 내가 농사일을 할 때는 일일이 손으로 다 해야 했었다. 소를 앞장세워 논을 갈아야 했었고 손으로 모를 심고 김을 매며 낫으로 벼를 벴었다. 이런 과정들이 여든여덟 번이나 손이 가야 한 알의 쌀이 탄생하게 된다며 쌀 미(米)자 라는 글자가 만들어졌단다.

한 알의 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처럼 일손이 많이 갔으며 많은 정성이 깃들어지고 나서,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것이니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진 농부라야 한 알의 밥알이 고귀함을 알 수 있을 테다.

평생을 농사일만 하셨던 필자의 아버지는 흙은 거짓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봄에 콩을 심은 데에서는 어김없이 가을에 콩이 열렸으며 팥을 심은 데에서는 팥을 거두셨다고 말씀하셨다. 자기가 땀 흘린 만큼 거두니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고 하셨다.

80 평생을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라는 교훈을 철칙으로 알고 한평생을 농사만 짓고 사시다가 가신 분이다. 땅에서 생산되는 쌀밥을 비롯해 땅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먹지 않고는 단 며칠도 이 땅에서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며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식들에게 농사가 천하지 대본이다고 가르치셨다.

농자의 근본이 되는 밥알 한 톨도 허투니 다뤄서는 아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나는 잊지 않았다. 밥상 앞에 앉을 때는 바른 자세로 앉고, 숟가락은 절대로 왼손으로 잡아서는 아니 된다는 식사예절을 교육받았었다. 한 알의 밥알이라도 밥그릇에 붙어 있어서는 아니 되며 식사를 다 한 후에는 밥그릇에 물을 부어 숟가락으로 씻어 먹도록 배웠다.

그러나 요즘은 일부러 자녀들에게 왼손 식사를 권하며, 글씨까지도 왼손으로 쓰게 하는 부모가 있으니 바로 우리 집의 경우다. 쌍둥이 손자 녀석들에게 딸과 사위는 왼손 사용을 권장하는 것처럼 방관하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왼손 사용해야만 뇌도 발달하고 운동선수들처럼 양손이 고루 발달한다는 변(辯)이다. 만약에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요즘 세태의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궁금하다.

요즘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체력과 지능발달에 도움 준다는 왼손 사용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대대로 내려온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라는 우리의 근본정신의 전통을 살려 나가야 한다는 맘은 아버지와 같다.

머지않아 이 땅에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있는 하나의 별을 선택해 살게 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문명이 발달하고 대체 주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쌀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이며 서양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로 빵을 먹지 않고는 단 며칠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온 이소연 박사도 이 땅에서 생산된 밥과 라면 떡 볶기 김치들을 준비했다가 우주선에서 때맞춰 식사했었다고 들었다. 이때문인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이 자꾸 뇌리를 맴돈다.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라고 굳은 신념으로 살다 가신 아버지의 철칙은 이 땅에서 영원히 불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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