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시작
진주성-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시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8.28 16:4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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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시작

올해는 폭염이 극심하면서 여름의 끝자락이 유난히 길고 지루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에도 잠못 드는 열대야가 계속될 정도로 맹렬한 폭염이 지속됐다. 그러나 엊그제 처서(處暑)가 지나고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폭염이 한풀 꺾였다. 몇년만의 혹서라는 이번 여름 무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처럼 절기(節氣)의 변화는 참으로 오묘하다. 절기라는 것은 일종의 시간의 사이클이다. 무더위 후에 선선한 바람이 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추운 겨울이 오게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고 절기의 이치다. 이렇듯 매번 되풀이되는 단순한 현상이건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건망증은 단 며칠간의 무더위나 추위에도 호들갑을 떤다.

처서는 여름이 가고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처서가 지나면 예로부터 농부들은 무르익어가는 곡식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농기구를 씻고 닦아 수확의 계절을 대비하곤 했다. 또 여름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말리는 일도 이 무렵에 한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밭가의 풀을 베거나 산소의 벌초를 한다. 처서 무렵이면 벼의 이삭이 생길 때여서 햇살이 강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벼가 잘 여물게 된다. 처서에 비가 오면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게 된다.

처서는 우주의 시간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인 만큼 단순히 숫자의 의미를 넘어서서 시간의 변화를 바로 보고 삶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무더운 여름을 뒤로하고 세월은 이미 가을의 문턱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의 확산과 장기화는 물론이고 나라 안팎으로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뒤숭숭해서인지 더위가 돌아갔다는 처서가 올해는 유난히도 각별하다. 처서가 지나면서 여름 무더위가 잦아들게 되면 부디 코로나19도 좀 사그라들어서 가을철 시원한 바람처럼 우리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가을이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늦여름이 남아있는 초가을은 경계에 있는 계절이다. 여름과 가을의 길목에서 마주친 배롱나무와 해바라기는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 모두 초가을의 정취를 느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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