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만월의 추석 유교전통의 오랜 관습이다
현장칼럼-만월의 추석 유교전통의 오랜 관습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9.18 16:4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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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태/창원총국 국장
최원태/창원총국 국장-만월의 추석 유교전통의 오랜 관습이다

만월의 추석에 우리는 성묘한다. 유교전통의 한국인의 오랜 관습이다. 동요작가 윤석중의 <달 따러 가자>란 가사의 동요가 있다.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뒷동산에 올라가 무등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 바느질도 못 한다더라

얘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 달아 드리자"

실제로 달 따는 일에 경쟁이 붙었다. 세계에서 7번째로 달에 우주선 쏘아 올렸다. 열국과 기업들이 달 여행과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달과 가까이 다가온 이미지다. 미국에 이어 90년대 들어 소련, 일본, 중국, 인도, 유럽연합 등이 달 탐사 경쟁에 뛰어들었다. 미래 에너지원으로 기대되는 핵융합의 원료가 있고 관광으로 수입을 올리려는 목적에서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의 신 아폴로와 달의 신 아르테미스가 제우스에서 태어난 오누이란다. 동서고금에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남자는 태양, 여자는 달로 상징되었다. 하늘, 태양, 불, 낮, 이성 등은 모두 남성으로, 반면에 땅, 달, 물, 밤, 감성 등은 여성적 은유들이다. 이런 정서에 도전한 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영성가 다석 유영모 선생은 "태양을 꺼라"는 화두를 내세웠다. 태양을 끄면 뭐가 나타나는가? 달이 뜨고 별이 뜬다. 태양을 끄라는 것은 인간중심, 이성 중심으로 사고해온 서구 사상에 대한 반란이요 우리 식의 독자적 사유 체계로 전환을 의미했다. 태양을 끄고 어둠을 직시하라는 다석의 외침이다.

천문학자에게 낮이 별 소용이 없듯이 우주의 신비를 캐려는 사람이 밤의 영원을 더 사모 하듯이 우리도 낮의 밟음보다 밤의 어둠에, 있음보다 없음에, 채움보다 비움에 눈을 떠야 한다고 다석은 권면한다" 달은 날마다 그 모습이 변한다. 나타나서 자라고 기울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달의 변화와 순환, 재생의 원리는 우주질서의 축소판이기도 하고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여 주는 것 같다.

달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초승달에는 재생, 보름달에는 영예로운 왕만이란 의미를 붙였다. 달이 지구에 끼치는 영향력으로 밀물과 썰물, 사리와 조금 등 조수 간만의 차이가 생겨나듯 병과 죽음, 생명력의 풍요도 달과 관계 있다고 믿었다.

태양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달이나 별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와 달의 존재감이 비교가 되었다. "누가 더 밝은가?"란 우문에 현답은 "자기 홀로 빛나는 태양보다 타인을 빛나게 해 주는 달이 더 밝다"고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는 자기 홀로 찬란히 빛나는 해라는 모델보다 남을 높여 주고 섬김으로써 비추는 달의 모범이다.

일년 중 달이 그 빛을 최고로 내는 추석은 달의 계절이다. 우린 추석에 무덤을 찾는 성묘를 행한다. 일년 중에 이때 한번 죽은 자의 무덤을 살피고 제초하고 성묘한다. 추석에 달의 만월을 반기듯 고인이 된, 조상들과 친지들이 묻힌 무덤을 찾는다. 무덤의 고인은 세상의 산 사람을 이끈다. 무덤이나 묘지는 경건의 장소로 존재한다.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성찰하는 곳이다. 그래서 무덤은 죽은 자의 것이 아니고 남은 자를 위한 곳이며 산자를 위한 증표로 남아있다. 우린 날마다 어디서나 쉽게 죽음의 표징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산책길의 묘지, 신문의 부고란, 근린의 공원, 가까운 곳에 있는 납골당 등을 접할 수 있으면 좋다.

서구의 오랜 성당이나 수도원에는 지하에, 주변에 묘지를 형성하고 있다. 무덤은 무서운 곳, 더러운 곳이 아니다. 거룩하고 친밀한 장소로 인상을 얻게 된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의미로 늘 되씹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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