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원칙을 지키는 삶
칼럼-원칙을 지키는 삶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9.19 16:4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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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원칙을 지키는 삶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용 선생은 고향에 있는 자식들에게 편지로 훈육을 했다. 한 번은 둘째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네 형이 왔을 때 시험 삼아 술 한 잔을 마시게 했더니 취하지 않더구나! 그래서 너의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형보다 배도 넘는다고 하더구나. 어찌 글공부에는 이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酒量)만 아비를 훨씬 넘어서는 거냐? 좋지 못한 소식이구나. 네 외할아버지는 말술을 거뜬히 마셔도 취하지 않으셨지만 평생 동안 술을 입에 가까이하지 않으셨다. 벼슬을 그만 두신 후 늘그막에 세월을 보내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수십 방울 정도 들어갈 조그만 술잔을 하나 만들어 놓고 입술만 적시곤 하셨다. 무릇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하는 흉패한 행동은 모두 술로 말미암아 비롯된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고(觚)라는 술잔을 만들어 절제하였다. 후세에서는 그 ‘고라는 술잔을 사용하면서도 능히 절제하지 않으므로 공자는 ’논어‘〈옹야편〉23장에서 말씀하셨다. ’자왈 고불고 고재 고재(子曰 觚不觚 觚哉 觚哉)‘풀이하면 고가 고가 아니면 고이겠는가. 고이겠는가. 고라는 술잔을 사용하면서도 주량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고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경계하여 절대로 입에 가까이하지 말거라.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 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 대고 잠에 곯아떨어진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暴死)하기 쉽다. 주독(酒毒)이 오장육부에 스며들어 하루아침에 썩어 문드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술로 인한 병은 등창이 되기도 하며, 뇌저(腦疽)·치루(痔漏)·황달(黃疸) 등 별스러운 기괴한 병이 있는데, 이러한 병이 일어나게 되면 백약이 효험이 없게 된다. 너에게 빌고 비노니, 술을 입에서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하여라.‘

위 편지내용에 나오는 ‘고(觚)’는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 술잔을 말한다. 술잔 모양을, 술 마시기 불편하게 만들 목적으로 원형이 아닌 모나게 사각(四角)으로 만들었다. 절주를 위해 만든 이 고라는 술잔으로 절주를 하지 못한다면, 절주를 위한 술잔이 되겠는가? 혹은 고라는 이름을 쓰면서도 술잔에 각을 없애 사용한다면, 절주를 위한 술잔이겠는가? 고라는 술잔을 사용하면서도 주량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고가 아니며, 둥근 모양의 술잔으로 술을 마시면서 고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고대인들도 술을 마심에 있어 절주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가 보다. 얼마나 술 조절이 어려웠으면 술잔을 각(角)지게 만들어 물리적으로 불편하게 하고, 모서리가 둥근 술잔으로 술을 마시면서도 술잔의 이름을 고라고 한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술잔뿐이겠는가? 부모님께 들었던 일상의 기준, 선생님께 배운 공부와 생활의 원칙, 여러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빛나는 인생의 교훈, 직장 선배나 상사들에게 들었던 직장 생활의 철칙 등 세상에는 수많은 원칙이 존재한다. 원칙은 대체로 지키기가 쉽지 않다. 쉽게 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원칙으로 정해 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술을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절제를 하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지키기가 어렵다. 달콤한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료나 탄수화물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라는 것인데,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남들에게 욕 듣는 게 싫으면 욕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비단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회가 국회의원들의 권위와 수당만 열심히 챙긴다면 그게 국회이겠는가? 법원과 검찰이 판사와 검사들의 안위와 권위만 챙긴다면 그게 법원과 검찰이겠는가? 세상에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의 법조문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조직화되었어도 국민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선별적으로 적용된다면 그게 민주주의의 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최고의 부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삶, 특히 스스로 정한 인생의 원칙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삶이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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