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너와 나의 거리가 너무 멀고 깊어
칼럼-너와 나의 거리가 너무 멀고 깊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9.26 16:5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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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너와 나의 거리가 너무 멀고 깊어

필자는 태평양 전쟁의 포성이 끝나기 전에 덕유산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이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인한 6·25동란, 1960년 4·19혁명, 1961년 5·16군사정변, 1964년 우리군인의 월남 파병이 시작 될 때 군에 입대하기도 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군 특수부대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준공, 1973년 포항제철 준공, 1979년 10월 25일 삽교천방조제 준공식 때는 농업진흥공사에 근무하면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참석하시어 준공식 테이프를 끊으실 때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었다. 안타깝게도 그날 저녁 대통령께서는 궁정동에서 부하에 의해 서거하셨다. 정국은 혼란 속으로 치닫고 있었다. 가장 우려 되는 점은 북한의 남침이었다. 이듬해인 1980년 봄은 광주사태로 정국은 더욱 혼미가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우려했던 북한의 남침은 없었다. 기적이었던가! 1986년에는 아시안 게임을 치렀고 2년 뒤인 1988년에는 올림픽을 치렀으며 2002년에는 축구월드컵도 성공리에 치르면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4강이라는 신화도 만들어 냈다.

나 개인에 관한 짧은 역사이기는 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일련의 영광스러운 사건들이 아니고 6·25동란의 참극의 아픈 상처들이다. 전쟁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을 보았으며, 적군이 우리 동네에 들어 왔을 때는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광경들을 많이 목격하기도 했었다. 연합군이 우리동네에 탱크를 몰고 들어오자 인민군들은 우리 동네 남자들을 모두 잡아가서 그들의 짐을 지고 가자고 붙들어 간 후 모두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는 아버지 없는 아이들, 남편 없는 전쟁미망인들이 많았다. 이런 전쟁의 참상을 생각하면 사람에게 가장 급한 것은 혁명도, 고속도로도, 제철소도, 방조제도, 이념갈등도 아닌 바로 먹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런 짧은 역사의 사연들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몸소 겪으면서 체험으로 남은 세대는 이제 인생의 종착역을 눈앞에 둔 얼마 남지 않은 세대들이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요즘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을 보면 우리 역사를 너무 부정적이고 왜곡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배고픔을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목구멍에 밥 한 숟갈이 넘어가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현재의 우리들 모습은 너무도 풍요롭다. 기성세대들은 굶어 죽어가면서 건져 놓은 조국인데… 명세기 배운 자들이라 하는 자들이 선배들의 노고를 비하하고, 부정하고, 왜곡하는 모습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뿐이다. 공(功)을 부정하고 과(過)만 들추어내어서 무엇 하겠다는 것인가? 우리 선조의 노고와 업적은 우리가 명예롭게 정리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 아닌가?

소위 엘리트라고 하는 정치인들은 국민을 받들어 위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지만 자격 있는 이를 가려내 권력을 맡기려 했던 노심초사 선택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새정부가 이루어야 하는 개혁은 갈 길이 멀고 고환율·고물가·고금리·고실업의 악순환에 대한 불안이 시시각각 밀려오는 이 시기에 집권당도 야당도 실망만 준다. 한국정치의 새바람이라고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젊은 여당 대표는‘쥘 수 없다면 부숴버린다.’는 사생결단으로 자기가 몸담고 있는 당과 대통령을 들이 받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집권당은 꼬리를 무는 가처분 소송에 맞서 비대위 설치와 해제를 반복한다. 야당은 더 심하다. 사법리스크가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걸려 있는 당대표를 철통 방어하는 것이‘민주수호’인양 똘똘 뭉친 모습에는 정치 혐오만 생긴다. 나라를 잃었던 옛 시절에 목숨 걸고 구국투쟁에 헌신했던 그 님들을 생각하면 죄송스럽기만 하다. 현 권력자들의 정치폭력에 수탈당하지 않으려면 오로지 맑은 눈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그네들의 감언이설에 표리부동에 현혹되면 당한다.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조국을 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으니…더욱 눈을 크게 뜰 수밖에.

필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 학기 강의가 끝나고 나면 설문을 꼭 받아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믿었던 친구나 애인의 배신·에이즈·독감·바이러스·사스·핵무기·태풍·홍수·교통사고 등 다양한 응답이 나오지만 정답은 없었다. 정답은‘배고픔’이야 라고 하면 고개를 끄떡이는 학생도 있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도 있다. 배부른 지금 좌우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 세대 간 갈등의 골이 너무 멀고 깊기에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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