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칼럼-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10 16:4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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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사무실이나 가게나 또는 가정집에 가면 서예가의 글씨로 크게 써서 액자(額子)나 족자(簇子)로 많이 걸려 있는 글귀이다. '논어'〈위인편〉29장에 나오는 말이다. 풀이하면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이다. 공자께서는 덕(德)을 열 개의 단어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자(慈)·우(友)·공(恭)·효(孝)·용(勇) 이다.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의는 의리를 지키는 사람, 예는 예의를 지키는 사람, 지는 지혜로운 사람, 신은 믿을 만한 사람, 자는 아랫사람에게 자상한 사람, 우는 친구 간에 우정이 돈독한 사람, 공은 손윗사람에게 공손한 사람, 효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 용은 용기 있는 사람. 이를 가리켜 덕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고 했다.

이를 좀 더 가만히 깊게 생각해 보면 덕이 있는 사람의 도덕적 기준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런 덕을 갖춘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여기에 나오는 고(孤)는 외롭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기도하다. 잇속을 위해 만난 사람은 잇속이 사라지면 더 만날 이유가 없어진다. 월급 때문에 출근한다면 월급이 사라지는 날 출근할 이유가 없어진다. 월급이 300만 원이면 300만 원만큼의 노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한 만큼 받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기대는 다르다. 그러니 주는 사람은 월급이 많아 보이고, 받는 사람은 월급이 적게 느껴진다. 사장과 사원의 관계가 그렇다. 이럴 때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팀장과 팀원의 관계나 상사나 부하의 관계가 그렇다. 부모자식 관계나 형제자매 관계도 그렇다. 자식은 유산상속에만 관심이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는 소홀하다. 부모를 모시는 데 장남 차남이 무슨 상관이냐며 형은 동생에게 미루고 동생은 형에게 미룬다. 병들고 몸이 불편한 부모를 요양원에 맡겨 놓고, 자식이란 놈들은 새끼들을 데리고 멀리 여행을 즐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외면하고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보고 그 자식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인과에는 응보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 부모는 나중에 자신이 병들고 나약해 지면 필히 그 자식이 본 대로 하게 된다. 부모가 서운해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한 대로 하는데 왜 서운해 해요? 라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재산 상속 가족회의가 열리면 울고불고 싸움이 벌어진다. 어떤 놈들은 왜 살았을 때 유산 정리를 깨끗하게 해 놓지 못했냐고 죽은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홀로 이 세상에 왔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홀로 왔기에 혼자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만 잘하면 되고, 나만 똑똑하면 되고, 나만 성실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니 모두 남이 되고 말았다. 매일 함께 먹고 함께 지낸 직장 사람들도, 형제들도 거의 남이 되었다. 이때 고(孤) 즉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때 뉘우쳐야 한다. 직장이 문제가 아니라 상사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논어'〈헌문편〉을 보면 천리마(千里馬)는 날렵한 생김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말이 아니라 훈련과 조련으로 얻어진 덕성(德性)을 가진 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말에게 적용된 덕(德)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덕이란 태어날 때부터 훌륭한 인품이나 소질의 소유자가 아니라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덕을 키운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운명을 지닌 우리의 삶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이다. 이것이 삶의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좋은 이웃을 얻는 방법은 이웃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은 그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이다. 선배나 고객에게 사랑받는 방법은 그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이다. 외로웠던 과거였지만 외롭지 않은 미래로 바꾸는 방법은 환경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혹여 지금까지 나와 우리 가족만이 삶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타인도 그 기준에 추가할 이유가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큰 삶의 질이 펼쳐질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꾸 자문해 보자 나는 유덕자(有德子)인가? 나는 덕이 있는 사람인가? 외로운 사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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