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조선총독부의 악행
아침을 열며-조선총독부의 악행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26 16: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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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조선총독부의 악행

과거 일본과 일본이 저지른 그 끔찍한 짓들 즉 임진왜란 때의 귀와 코를 벤 사건 등으로부터 차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우리가 당했던 그 참혹한 사건에 대하여 그들은 참된 속죄를 하기는커녕 나아가 점점 조롱하기까지 하는 그 파렴치한 행태를 보는 우리로서는 저들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구나! 저들은 절대 용서하지 못한 군상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말만 들어도 분노가 치오르는 관동대지진 때 우리가 터무니없이 당한 것이나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징집과 위안부와 같은 가슴 아픈 일들 그래서 절대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여기 두 가지가 있고 이를 우리 국민이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아 모르고 있는 사건이 있다. 1945년 8월 일본본토 상공에 날아온 현대판 죽음의 백조에서 떨어진 두 포알은 일본 왕의 눈물겨운 항복선언으로 매듭이 지어졌고 이는 전 세계에 바로 알려졌다. 당장 다급하게 된 곳은 바로 한국에 있던 조선 총독부였다. 일본 왕의 느닷없는 항복선언에 공황에 빠진 총독부는 그 순간에도 머리를 굴렸다.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가야겠고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조선인들의 보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법을 찾았다.

당시 우리 조선인들에게 독립군들이나 독립투사들은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였고 지도자였기 때문에 총독부는 이들이 성난 조선인들을 달래어 그들을 안전하게 본국으로 보내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당시 지도자였던 여운형을 만났다. 대전이 끝나고 이제 한국도 해방을 맞았으니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나와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하고 우리 일본인들도 안전하게 돌아가야 해방 후 조선이 폭동이나 소요가 없이 안정된 국정이 유지되지 않겠냐고 설득하였고 정치적 입장에서 조선 총독부의 도움이 필요했던 여운형은 매우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이를 받아들여 그들을 돕기로 한다. 여운형의 이런 기적 같은 협조로 인해 총독부는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하고 있었고 신속히 조선의 혼란을 최소화하는데 협조하고 평화롭게 돌아가겠노라고 맹세를 하였다. 그런데 그랬던 조선 총독부의 태도는 곧 바뀐다. 얼마 전까지 한국인들에게 맞아 죽을까 봐 독립운동가들에게 찾아가서 목숨을 지켜달라고 빌었던 그들은 미군이 일본군들에게 해방된 조선의 통치를 맡기는 선택을 하면서 태도가 완전히 돌변한 것이다. 그들은 당당하게 미군의 손을 잡고 치안을 빌미로 아주 천천히 그들의 안전을 확보한 후 아주 사악한 음모를 꾸민다. 당시 서울에 있던 일본은행에서는 돈을 찍어내는 윤전기를 최대한으로 가동하여 무려 36억 엔을 만들어 시중에 뿌렸다. 본국으로 도망한 직후 우리나라는 물가가 한 달 만에 무려 20배나 치솟는 경제적 파탄을 만난 것이다.

거기다가 그들은 급조한 돈으로 우리 문화재나 귀중품을 싼값에 사서 가져갔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우리를 녹여버리고자 혈안이 되었다.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 있고 이 또한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일본에 일제에 당하고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또 당한다. 일본은 항복 직후 일본에서 강제징집을 당하거나 노역에 임하던 조선인들에게 귀국 배를 제공한다. 구태여 패전국이라 그를 정신이 없었을 텐데 굳이 귀향 배를 준비한 것이다. 이른바 우키시마호 사건이다. 우키시마호는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24일 한국인 징용자 수천 명을 태우고 일본 오미타토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중 일본 근해에서 침몰한 귀국선이다. 당시 일본은 한반도 강점 시 비행장, 터널, 지하탄약고 등 건설을 위해 아오모리현 반도에 이주시켜 강제노역에 투입했던 한국인 징용자와 가족 등 7500여 명을 일본 군함 우키시마호에 태워 1945년 8월 22일 일본 최북단의 군항 오미나토항을 출발시켰다. 광복을 찾은 한국인 징용·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유골 19구를 조국으로 귀환하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항 이틀째인 8월 24일 폭발사고가 일어나 우키시마호는 침몰당하였다. 사고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일본 정부는 미군 촉뢰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일본의 자작극이다. 돌아간 우리 동포가 일본이 행한 악행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수장시킨 것이다. 우리는 저들의 악행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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