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트라우마 그것이 인생
아침을 열며-트라우마 그것이 인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1.14 17:0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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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
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트라우마 그것이 인생

십여년전 필자가 살던 산촌 이웃엔 6·25전사자의 피망인이 있었다.

유복자를 키워 도시로 보내고 농사일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가금씩 “영감아 땡감아 날두고 어데로 갔노?” 하며 흥얼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리움이 쌓인 한맺힌 절규였었다. 그랬다. 전선에서 돌아오지 못한 자는 가족이 고달프고 돌아온 자도 트라우마로 불행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성공한 수 많은 사람들이 언론매체에서 기회있을 때마다 전적을 화려하게 부풀려 댐을 보았지 않은가! 첨병조장이었던 필자의 인생은 구질구질한 걸레 같았다.

대원이였던 정하,석영이,덕룡이,현태,현갑이가 저승으로 간지 오래고 둘은 골골대며 필자 역시 육신의 자유를 잃어 버렸다. 그래도 한명의 전우는 끈끈한 의리로 내왕을 한다. 이미 일년여의 노련한 전사가 되어 있던 필자 소대에 신임소대장이 부임해 왔는데 기막힌 우연이었다.

긴장감, 두려움이 묻어나는 신입의 그를 조금은 텃세를 하듯 매의 눈으로 쏘아보다가 그만 탄성을 질렀다. “이문디 자슥아 여기 뭐할라꼬 왔노?” “어 임마, 니는와 여기 있노?” 경상도 진주촌놈 둘이 서로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한참을 그날밤 px에서 사다논 비상용 캔맥주를 실컷마시며 살아 돌아 가자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고향의 죽마고우는 사단10호작전 중에 부비트랩에 하지 중상을 입었지만 한쪽만 절단했고 필자 역시 좌 골반에서 하지쪽 중상을 입었다.

나트랑 101 외과병동에서 응급치료 후 그는 조기귀국을 나는 3개월 가료후 원대복귀 했지만 만기가 되어 바로 귀국선을 탔다.

말단이지만 그는 공직에서 정년을 맞았고 지금도 심드렁해 있는 나를 위로해 준다. 부산에 정착해서 조그만 사업체를 일구에 잘 운영하던 중 전역8년차에 이름도 모를 병으로 쓰러져 버렸다. 대학병원과 유명병원을 전전하며 재산을 탕진했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한방치료, 대체요법, 가도원, 민간요법 등등에도 십여년을 의식불명으로 또 4~5년을 전신마비로 거미줄에 걸린 나비신세와 다름이 없었다. 세월이 한참을 흐른후에야 고엽제를 알았고 마치 고엽제환자의 대명사인양 이름이 오르내렸다. 분명히 바라지 않은 인생의 야망을 뒤엉켜 버린채 펼쳐진 것이 누구의 탓이였을까? 영혼은 매마르고 분노는 쌓이고 눈동자엔 절망만 쌓였다.

이태원에서 핼러원행사 압사를 숨져간 아이들 부모의 상실감이 그럴거다. 가지말라고 강하게 붙들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얼마나 클지 필자는 짐작한다.

따스한 위로의 눈빛 전우 있어 지금을 살아간다. 모두의 상처 아물기를! 방어가 어렵다는 미사일 여러종과 방사포를 쏘아대고 핵을 사용할거라는 엄포도 빠뜨리지 않는데 역전의 용사 가슴에 울분이 치밀게 한다. 내일의 안보를 장담할수도 없고 세계를 휩쓰는 경제불안으로 우리도 가슴 조리는 나날인데 거짓의 연출, 비리의 옹호, 저주의 전쟁으로 민심을 이반시키는데 혈안인 국회의원이란 몹쓸 놈들을 보고 있다.

열불이 난다. 몽땅 도살장이나 푸틴의 의용군으로 보내고 싶다. 껍데기로 살며 숨만 쉬고 있는 용사의 가슴이라도 시원해지게! 꿈속에선 아직도 전장의 야생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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