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설날
중년의 설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2.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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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곧 설날이 다가온다. 어릴적 설날은 손꼽아 기다리는 설레임이었다. 먹을 것이 풍요롭지 않았던 옛날엔 떡, 고기, 과일 등 차례상에 가득한 음식이 더없는 기쁨이었다. 무엇보다 세뱃돈을 받을 수 있는 일년 중 유일한 날이기도 하니 동심의 설날은 마냥 좋은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설날은 더이상 기다림과 설레임의 날만은 아닌듯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이 설날인 만큼 부모 형제, 조카들, 심지어 일가친척들까지 일일이 나름의 선물을 준비해야하고,
어른들 용돈이며 아이들 세뱃돈까지 계산해보면 그 지출이 만만치 않다. 더욱이 고향이 먼 곳인 사람들에게는 오고가며 길에 뿌리는 교통비까지 감안해야 하니 설을 맞이한다는 것이 부담이고 걱정일 수밖에.. 이런 연유에서인지 더러는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그렇다해도 명색이 설날인데, 고향엘 가자니 형편이 허락치 않고, 안 가자니 그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빈 손으로 부모님을 뵈면서 말로만 감사하고 건강을 걱정한다면 누가 봐도 진정성이 없을 것이다. 형제들, 조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을까. 말로는 "마음이 먼저다"라고 한다. 말은 참 좋다. 누군들 "사람 나고 돈 났다"는 이치를 모르리. 그런데 살다보면 돈 나고 사람 난 세상, 마음은 있어도 돈이 없으면 그 진실성을 누가 인정해줄까 싶다. 돈이 사람노릇을 좌우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부모님께 드리는 봉투가 두툼하면 왠지 자식으로서 효도를 다 한듯 싶어 속내가 편하고 자식들 조카들에게도 금전적으로 할만큼 해야 부모노릇 어른노릇을 다 한듯 싶으니 이런 현실을 무조건 아니라고 부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자주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데 삶이 힘들다 함은 하루 세끼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람노릇의 문제일 게다. '사람노릇' 살면 살수록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말이 없다 해서 할 말이 없겠는가. 마음이 복잡하니 생각이 많을 수밖에
고향 산마루에 걸터앉아 쓸쓸한 바람 소리 듣노라니
험난한 세상, 힘겨운 삶일지라도 그저 정직하게 욕심 없이 살라고 합니다
어진 목소리, 메아리 같은 그 말씀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왔기에
떳떳할 수 있고 후회 또한 없다지만 이렇게 명절이 다가오면
기쁨보다는 찹찹한 심정 어쩔 수 없습니다
부모·형제 귀한 줄 뉘 모르겠는가마는 자식 노릇, 부모 노릇
나이가 들수록 어른 노릇, 사람 노릇, 참으로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은 뜻과 같지 아니하고 삶이란 마음 같지 아니하니
강물 같은 세월에 묻혀버린 내 젊은 날의 별빛 같은 꿈이여!
올해도 빈손으로 맞이하는 명절, 그래도 고향 생각 설레어 잠 못 들까 합니다
-'중년의 명절' 이채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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