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존지수(共存指數)
칼럼-공존지수(共存指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1.21 16:5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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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공존지수(共存指數)

공존 지수(Network Quotient·NQ), 즉 네트워크지수는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운영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사례1.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게 과자 따먹기 경기를 시켰는데, 모두 손잡고 천천히 걸어가 같이 먹었다. “왜 뛰어가 혼자 많이 먹지 않느냐?”고 묻자 “다른 사람이 슬픈데 어찌 행복할 수 있나?”라고 대답을 했다. 세계 14만 명의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각국의 공존지수를 조사하였더니 한국은 36개국 중 35위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최하위다. 사람을 이해와 배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상대를 경쟁자로 만든 줄 세우기 교육의 산물이다.

사례2. 우리나라의 어느 여행자가 필리핀의 톤도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이곳은 세계 3대 빈민의 도시라고 한다. 한 아이가 여행자에게 물었다.“선생님은 햄버거라는 것을 먹어 보셨어요?”“응, 그럼. 많이 먹어 보았지.” “햄버거는 어떤 맛인가요?”“궁금하니?”“정말 궁금해요. 사람이 잠들기 전에 자꾸 상상하면 상상했던 것들이 꿈에 나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잠들기 전에 햄버거를 상상해 보곤 했는데 꿈에 나오질 않아요. 사실 본 적도 없고, 먹어본 적도 없으니 제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여행객이 다음 날 시내로 나가 아이가 넉넉하게 먹을 수 있게 햄버거 3개를 사서 등교하는 아이의 가방에 몰래 넣어 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는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가방 안에 햄버거 있는 거 발견하지 못했니?”, “알고 있어요. 하지만 햄버거를 넣어준 분에게 고맙다고 말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냥 먹을 수 있겠어요? 혹시 선생님께서 넣어 주신 건가요?”,“응 그래, 알았으니 이제 어서 먹어라, 상하기 전에…” “아! 감사합니다.” 아이는 웃으며 대답하더니 주변을 살폈다. 아이는 다른 친구들을 경계한 게 아니라 친구들의 수를 헤아리더니 식당에 가서 칼을 가져와 햄버거 3개를 15개로 잘라서, 모여 있던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왜 나누는 거니? 햄버거 먹는 게 소원이었잖아!”,“혼자 먹으면 혼자 행복하잖아요. 이렇게 많은 친구가 있는데 … 혼자만 행복하다면 그건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조금만 먹어도 저는 행복해요. 우리가 모두 함께 먹었으니까요.”

우리나라 아이들 같으면 과연 이 아이들처럼 나누어 먹었을까? 최악의 빈민가에서 사는 아이들은 황폐한 곳에서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것 같지만, 고통 속에서도 밝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참으로 중요하다.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나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를 ‘애기애타(愛己愛他)’라 한다. 작게는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크게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사랑의 의미를 집약하고 있다. 우리가 진실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부단한 수양을 통한 인격완성이 우선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자기수양이라… 도산 선생께서는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려‘애기애타(愛己愛他)’라는 유묵(遺墨)을 남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원래‘애기애타’라는 말은 논어(論語)에 근원한다. 논어 헌문편(憲問編)에 위인지학(爲人之學)을 하지 말고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우리나라에서도 근세 전후기를 통해 학문하는 선비들에게 늘 비중을 두고 강조된 말인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문명의 중추에 해당하는 일이다. 일상 쉬운 말이나 위인지학이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공부이며, 연설이나 잘해서 번쩍여 보이는 공부, 부귀공명을 노리는 과거(科擧)위주의 공부 등을 말하며, 위기지학이란 내 자신이 지·인·용(知·仁·勇)을 겸비한 도덕적 인격으로 대성하는 지도자의 경지, 즉 자기의 위대한 완성이다. 쉽게 말하면 수기(修己)라 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치인(治人)’의 풀이인데 남을 다스린다는 사회통념으로 흘려버리면 진의를 잃어버리게 된다. 치인에는 사랑의 정신이 깔려 있다. 인(人)은 나하고 경쟁하고 승부하고 지배하는 인(人)이 아니고 내가 늘 사랑해야 하는 인간이며 치자(治者)의 뉘앙스는 내가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을 계몽하고 순리로 도(인류대동의 길로 나아가는 코스)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물 흐르듯 이끌어 간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 36개국 중 35위? … 교육의 지표를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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