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위령제에 대한 제언
현장칼럼-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위령제에 대한 제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2.11 17:2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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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 제전위원장·진주문화원 이사
최정호/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 제전위원장·진주문화원 이사-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위령제에 대한 제언

계사순의 말만 들어도 마음에 저려오는 아픔과 처연함, 순절한 선인들의 비통함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오늘도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은 진주성 곳곳의 임진, 계사년 전투의 상흔들을 더듬으며 묵묵히 하늘과 땅을 바라만 보고있다.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의 조성경위를 살펴 보고자한다.진주대첩 계사순의 민·관·군·승병 호국위령제 묘광 장순자 이사장의 말에 의하면 장순자 여사는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김시민 장군의 충혼으로부터 영을받아 제단도 없던 진주성에서 홀로 김시민 장군, 논개, 7만 민·관·군에 대한 위령제를 올리기 시작했다.

때론 논개 의암에서, 남강변에서, 삼장 당산나무 밑에서 제단도 없이 미친 사람 취급과 손가락질, 등 떠밀리기도 하면서 한해도 쉬지않고 영령위무의 제를 올렸다.

그런 세월을 보내는 어느 한날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이 이곳을 방문한 대통령의 눈에 띄게 되었다고한다. 대통령은 수행원에게 그 사유를 물은즉 7만 민·관·군·승병의 천도를 위한 제를 올린다는 말에 국가가 나서서 해야할 일을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홀로함에 크게 감격하여 그 당시 금액으로 1억5000여만원을 기금으로 지원 해준다는 것을 마다하고 진주시에 위탁 했다고 한다. 이에 진주시는 기부금을 보충하여 1987년 12월 14일 지금의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건립 초석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2022년 10월 5일 오후 2시 임진대첩계사순의단 앞에는 내외빈과 시민,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하여 제51회 진주대첩 계사순의 7만 민·관·군·승병의 호국영령위령제가 엄숙한 가운데 봉행됐다.

위령제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나라,이곳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조차 아끼지않고 순절한 7만 민,관,군 승병들의 비통함을 위무하고 우리의 어린 아들과 딸들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고 미래에 훌륭한 일꾼이되어 국가에 기여하기 위함으로 매년 시행하고 있다.

7만 군·관·민이 순절하게 된 배경에는 1592년 임진년 진주성 1차 전투에 패한 왜적들은 풍신수길의 복수어린 망령에 의해 이듬해 1593년 계사년 10만 대군으로 진주성을 공격하니 중과부적 7만 민관군, 승병은 구국의 한을 품은채 순절의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어느곳 전사에도 한 전장의 전투에서 7만의 민관군이 전사한 곳은 이 지구상에서 진주성 전투밖에 없으리라. 그 비통하고 한스런 영령들의 희생을 무엇으로 보답 해야할까?이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곡창지대 호남 진출을 막을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나라의 번영과 행복한 삶이 있지 않았을까?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위령제에 대하여 몇 가지 제언을 제시해 본다.

첫째 목적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고 실행하자.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위령제 제전위원회는 2012년 7월 23일 경남도지사로부터 법인설립 허가(사단법인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위령제 제전위원회 제2012-15)를 받아 위령제 봉행을 해 오고 있으나 제대로 된 지원이나 후원단체도 없다.국가 기관에서 관심을 갖고 왜 위령제를 모셔야 하는지 목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나서야한다.

1만명이 순절한 남원의 만인의총도 사적지 제272호로 지정되어 국가예산으로 관리하고 있고 금산의 700 의총도 국가에서 지원하고 관리하고 있다. 남원 금산에 비하여 진주성전투는 한산대첩, 행주산성대첩과 함께 3대첩 전장이 아니었던가

그 당시 선조 임금은 대신과 함께 백성을 버리고 궁궐도 버리고 국가위란을 맞았을 때 진주대첩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큰 의미가있지 않을까? 하여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둘째 7만의총 조성도 서둘러 해야한다. 순절한 7만 민관군의 시체가 쌓여 강물은 멈추고 언덕을 이루었지만 오늘날 까지 무덤조성도 하지 못하고 순절한 그 위대한 뜻을 받들지도 못한채 영령들은 무주구천을 헤매고 있다.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만들고 그 혼백을 위무하며 천도를 위해 제사를 지내지만 하물며 나라를 위해 순국한 영령들의 무덤 조성은 일찍부터 준비하고 조성했어야 했었다.

셋째 과거의 역사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자. 우리나라의 국력이 10위권 내에서 살기좋은 나라로 진입할수 있었던 것은 혹독한 댓가를 치룬 우리 민족의 애절한 삶의 터위에서 가능했던게 아니었던가, 뼈아픈 과거의 역사속에 처참히 짓밟히고 순절한 순국선열들의 장렬한 순국 현장의 토대위에서 이루어졌음은 자명한 일이 아니던가? 이러함에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진주인이여! 부끄럽지 아니한가? 오늘부터라도 가슴에 새기고 순절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나라의 국운이 세계로 뻗어나가 순국선열들이 바라던 나라를 향하여 너와 내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민과 관이 힘을 합하여 세계속의 대한민국,대한민국 속의 진주 웅비하는 진주 창조에 함께 동참하여 힘을 모아 힘찬 전진을 하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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