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문자의 죽음
아침을 열며-문자의 죽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2.19 15: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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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문자의 죽음

21세기를 산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주제를 건드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시대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자가 사망했다.” 이 말은 아마도 “신은 죽었다”고 한 저 차라투스트라/니체의 말보다 더 스산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들려온다. 알다시피 문자는 우리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 결정적 요소의 하나였다. 그것은 이른바 문화와 학문의 기초였고 ‘역사’와 ‘선사’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인간은 언어적[=이성적] 동물(zoon logon echon)’이라고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마 그 언어를 ‘문자’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엄청난 저작들 자체도 그 한 증거가 된다. 우리는 그 문자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습득했고 타자와 후대에 그것을 전수했다. 적어도 3천년 이상 그것은 우리네 삶의 당연한 조건이었다. 우리는 문자 즉 글자와 글을 배우며 삶을 시작했다. 우리가 세종대왕 이도를 민족사 최고의 영웅으로 받드는 것도 ‘훈민정음’ 즉 ‘한글’이라는 문자를 창제한 그의 공적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거의 아무도’ 이 ‘문자’를[글을] 읽지 않게 되었다. 읽지 않다 보니 쓰지도 않게 되었다. 물론 읽기도 쓰기도 0은 아니다. 지금도 엄청난 책들이 시중에 쏟아져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책이라고 글이라고 다 글은 아니다. 좀 과장하자면 없느니만 못한 것들이 거의 태반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그걸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읽지 않음’은 우리시대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가 이 ‘글’이라는 것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었던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세태를 ‘문자의 죽음[글의 죽음]’이라고 인식하는 게 절대 과장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낌새가 좀 수상하기는 했다. 문자의 콜록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블로그라는 것이 유행하다가 슬그머니 퇴조하더니 요상한 축약어와 함께 트위터라는 짧은 글이 그것을 대체했고 페이스북이라는 것이 사진/영상과 함께 등장하더니 문자는 보조역할로 위축되었다.

한편에서는 유튜브와 틱톡의 영상들이 막강한 권력자로 등극했다. 대세인 스마트폰에서도 ‘글’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 1990년대 저 프랑스의 데리다가 ‘에크리튀르’니 ‘그라마톨로지’니 하는 말로 소위 ‘문자언어’를 ‘음성언어’에 대해 변호하고 강조한 것도 어쩌면 그가 그 문자언어의 몰락을 예감한 역설적 징조였는지도 모른다.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신문의 퇴조도 영상언어가 전횡하는 이런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출판업의 쇠락도 마찬가지다. ‘독서’라고 하는 인간의 문화적 행위가 석양처럼 저물어간다. 아니 이미 저물었다. 지금은 바야흐로 언어의 밤이다.

우리 시대는 과연 ‘다음 시대’를 염려하고 있는 것일까?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다음 시대는 우리가 없을 테니 상관없는 것일까? 천만에. 그 ‘다음 시대’엔 우리의 자식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보든 ‘자식들’은 대개 ‘자기 자신보다 더욱 소중하다’고 답한다. 그 아이들의 시대가 지금보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 못하다면 누군들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각성해야 한다. 문자의 부활, 글의 부활을 위해 촛불을 아니 횃불을 들어야 한다. 문자의 무덤 위에 자라난 영상이라는 거대한 나무를 베어버리거나 뽑아버리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또 다른 형태로라도 문자의/글의 묘목을 심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쓰기와 읽기라는 선순환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러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3대 교육채널 즉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에서 훌륭한 글들이 제공되고 보급되어야 한다. 어떤 점에서는 강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의 몫이다. 정치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45번이나 ‘정치’를 언급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는 그 정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에휴. 말을 말자. 신문을 읽기가 싫어진다. 이래서 사람들이 자꾸 입을 닫고 붓을 꺾고 있는가 보다. 시대의 상징으로서 다시 한 번 신음 같은 쓰디쓴 한 마디를 되뇌어본다.

“그리하여 문자는 죽고 말았다.” 범인은 바로 읽지 않는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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