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심(初心)을 잃지 않는 삶
칼럼-초심(初心)을 잃지 않는 삶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2.19 15:2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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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초심(初心)을 잃지 않는 삶

미국 시골의 통나무집에 한 병약자가 살고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 출입이 무척 힘들었다. 어느 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에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그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바위를 밀었다. 8개월이 지났다. 점차 자신의 꿈에 회의가 생겨났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바위 위치를 줄자로 자세히 측량을 해 봤다. 그런데 그 결과 바위가 1인치도 옮겨지지 않은 상태인 것을 발견했다. 그는 집안 현관에 앉아 8개월 이상의 헛수고가 원통해서 엉엉 울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와 그 옆에 앉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리 슬퍼하느냐?” 병약했던 그 사람이 말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밤낮으로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대답했다. “그래,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to move the rook) 말한 적이 없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to push against the rook)만 했을 뿐이다. 그럼 네가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찬찬히 보렴.” 그는 거울 앞에 갔다. 곧 그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남자는 병약했던 몸이 아니라 근육질의 튼튼한 남자였다.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감쪽같이 없어졌고! 매일 기분이 상쾌했었고, 잠도 잘 잤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계획은 표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변화 시킨 것’이었다. 그의 변화는 ‘바위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바위를 밀었기 때문에 생겼다. 삶에서도 ‘바위를 옮기는 표적’보다 ‘바위를 꾸준히 미는 족적’이 더 중요하듯 우리들 인생의 삶 또한 나날의 삶이지만 나날의 노력으로 초심을 잃지 않을 때 성공하는 비결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족적보다 표적을 중시하면 내리막길 인생이 되지만, 표적보다 족적을 중시하면 오르막길이 된다는 삶의 참된 교훈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 표적을 중시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족적을 중시하면서 살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일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에게 “당신의 인생에서 성공한 비결이 뭡니까?”라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우리 가정이 서로 신뢰하면서 약속을 꼭 지키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니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어느 시골 학교 운동장 철봉대 한구석에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 한 분이 서 있었다. 그 신사는 어릴 적 친구와 나이 60이 되면 어느 날 이 운동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어서 친구를 만나러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젊은 청년 한 사람이 급하게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와 그 노신사 분에게 물었다. “혹시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예 그런데 젊은이는 누구신지요?”, “네 제 아버지께서 2년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어릴 적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60이 되면 이 운동장에서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만약 그 약속 날 이전에 죽거든 네가 대신 나가서 만나주기 바란다.”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인은 친구의 죽음을 매우 슬퍼한 나머지 약속을 지켜준 친구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또 아버지의 당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실천한 아들 또한 크게 믿음이 갔다.

노신사는 동대문 시장에서 오랫동안 의류제조 판매업으로 고생 끝에 수 천 억 원의 재벌 회장이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노신사는 자신의 사업을 이어갈 후계자를 찾고 있던 중에 친구의 아들을 만나자 그 약속이 믿어져 자기의 기업을 안심하고 맡길 만하다고 생각되어 친구의 아들에게 기업을 맡기게 되었다. 정치인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정계 은퇴와 탈당과 입당의 번복을 밥 먹듯이 하고들 있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뒤로한 채 의술을 이용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고, 법조인이나 경찰의 실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담배꽁초나 휴지를 길거리 아무데나 버리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을 무시하고, 유턴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중앙선을 침범해서 차를 돌리는 부모에게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뒤에서는 선생님에 대해 온갖 흉을 다 보다가 앞에 가서는 촌지를 내밀며 굽실거리는 부모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면서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나는 금년 한해 얼마나 초심으로 살아왔는지 한 번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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