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흐르는 길-무의식을 의식화 하기
시가 흐르는 길-무의식을 의식화 하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1.01 17:2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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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무의식을 의식화 하기

아침에 혼자 해장국을 먹는다
해장할 일도 없이
해장국 먹다가 말에 맞지 않다는 걸
생각한다
그냥 국밥을 먹는다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말에 맞지 않는
일일에 맞지 않는 말들, 얼마나 하고 살아온 것일까
나의 일이란
처음과 이제, 이제에 이르도록 느낌에 말 얹어 주기
생각에 말 입혀 주기
사이와 틈 좁혀 주기 그런 일인데
해장국 한 그릇 앞에 놓고
지나가버린 일들, 쏟아내버린 말들
숟가락으로 뜬다
아, 망각 속에서 뜨여지지 않는
쏟아내버린 말들
국물로만 뜨여지는 것일까
코 훌쭉거리며 한 숟갈 또 한 숟갈 뜬다
후우 국밥이 뜨겁다
(강희근의 ‘해장국’)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지면을 통해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강희근 시인의 '해장국'이다. 시는 사물을 빗대서 말하기다. 어떻게 빗대고 있을까 기대된다.

산청에서 태어난 시인은 교수로서 문인으로서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평소 양민학살사건과 개천예술제에 관심이 많다. 경남 문단사 정리와 ‘산청·함양 사건’의 명예 회복에 관한 이론적 뒷받침은 강희근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시인은 시 감상을 ‘시 맛보기’라고 말하고 있고, 퇴직 후 문학에 늦게 입문하는 자들을 ‘후문학파’라고 부른다. 이처럼 시인은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새롭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 시 창작 교실이나 문학 행사장에 가면 후문학파가 많이 보인다. ‘후문학파’들을 보면 아직 우리 시가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책을 읽거나 시를 쓰거나 사색을 하는 것은 결국 모두 자아를 찾는 일이다. 후문학파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해장국'은 무슨 맛일까. 강희근식으로 맛보기를 해보자. 싱겁지는 않을까. 맵지는 않을까. 독자에 따라 여러 가지 맛으로 읽힐 것이다. 중의적으로 읽히는 게 좋은 시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생각과 느낌으로 맛보면 된다. 행간에 스며든 양념 맛을 지나치면 안 된다. 시를 쓴다는 건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일이다. 눈은 사물을 바라보고 있지만 손은 무의식이 지배한다.

시인은 평소 해장국에서 무슨 영감을 받았을까. 중앙시장 아니면 봉곡동 해장국집에서 “후우 국밥이 뜨겁다” 하면서 시인은 아마, 해장국을 시로 빗대보았을 것이다. 좋은 작품을 썼거나 좋은 시를 만나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고 했다. 시인은 새벽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해장국집에 들러 국물 맛을 본다.

강희근 시인은 해장국을 시집이나 경전으로 읽어내고 있다. 시는 비유와 상징 등을 사용한 시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해장할 일도 없”는 시인이지만 특유의 말솜씨로 분위기를 장악한다. 시인은 추임새와 시작 詩作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느낌에 말 얹어 주기/생각에 말 입혀 주기/사이와 틈 좁혀 주기 그런 일”이라 했다. 해장국을 먹으면서 감성 모드가 작동한다. 해장국이 한 편의 시로 다가온다. 콩나물을 보고 비유와 상징과 리듬을 그렸을 것이다. 시 맛보기를 하다 보면 개운한 맛일 수 있고, 아니면 언어유희만 하는 맹탕인 경우도 있다.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시원한 맛을 내는 해장국 같은 시를 생각했을 것이다. '해장국'은 오랫동안 대학에서 창작론을 강의한 시인의 시작법을 맛볼 수 있다.

“망각 속에서 뜨여지지 않는” 시어를 찾아 밤새 책을 읽고 사색을 하는 시인 스스로 다짐해본다. 귀한 시어들을 놓칠까 봐 “코 훌쭉거리며 한 숟갈 또 한 숟갈 뜬다” 시는 대상과의 ‘말 걸기’와 ‘틈 좁히기’라고 말하고 있다. 능력껏 맛 보시라. 겨울 감성에 맞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을 들으면 분위기가 더 좋아질 것이다.

시 '해장국'은 정갈하고 개운한 맛이라 할 수 있겠다. 새해에는 시집이나 경전으로 자아를 찾아 나서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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